골리앗의 펀치 닿자 툭툭 30년 전 우리 집이… 툭툭 50년 전 뛰어놀았던 골목이… 툭툭 한 시대가 사라진다. 대전은 조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중이다. 기억될 기록은 없다. 정훈 시인의 고택이 그러했고,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그럴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결코 부정사가 아니다. 침체 된 도시를 일으키는 시의적절한 선택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기억과 보존을 재개발과 도시재생에 대입해본다면 같은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딱딱한 명사에 감성과 온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자발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이했을 때, 가슴 벅찬 반짝임으로 남고자 하는 일말의 욕심이다.
중도일보는 2020년 연중 기획 시리즈 '대전기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버리고 남길 것을 선별해 기록물과 물리적 유산이 보존될 '메모리존(가칭)'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은 히스토리가 없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스토리텔링의 단서도 없다. 대전시 승격 100년을 앞둔 지금 '기록'을 위한 여정은 시작돼야 한다. 이는 훗날 오롯이 대전에 남겨질 문화유산이자, 수년이 지나도 밑천이 드러나지 않을 히스토리의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편집자 주>
1. 도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
2. 무너지는 도시, 대전이 사라진다
3. 다가오는 재개발, 그들의 이야기
4. 도시재생의 끝은 '메모리존'
5. 정체성 없는 대전, 100년을 준비하자
철거에 속도를 내고 있는 용문1.2.3지구 모습. 사진=이해미 기자 |
최근 서울을 비롯해 전국 시·도는 '기록원'을 설립하고 있다. 기록원은 행정적 사료에 국한하지 않고 시민의 기록을 수집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겠다는 취지의 문화기관을 표방한다.
반극동 코레일테크 전 대표가 본보의 ‘세상 속으로’ 칼럼에서 "오래된 것이 더 비싸지는 시대가 왔다. 그런 건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금방 태어난 명품과 유적지는 없다"고 주장한 것도 기록원 설립 취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전이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유산과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발자국을 남길 우리 모두 몫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또 기록원 설립에 속도를 내는 타 시·도의 사례를 통해 대전의 현재를 진단해볼 적기에 왔음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종종 재개발 예정지에서는 "낙후된 동네 뭐 볼 게 있나요"라며 "실은 말이야, 우리 집이 여기서 가장 오래된 집이야"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 내가 살아온 집과 삶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시는 문화재뿐 아니라 미래유산과 생활유산으로 나눠 기록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삶의 기록은 많을수록 풍요로워진다. 건축과 사람, 풍경, 편지 등 그 어떤 것이든 기록이 되고 자연스럽게 대전의 문화유산으로 남게 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네 자체를 파괴하는 재개발은 후 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도시재생과 가로주택 등 도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개발하는 배려형 재개발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이는 도시의 유산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철거에 속도를 내고 있는 용문1.2.3지구 모습. 사진=이해미 기자 |
기록의 발견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 전시 모습. 사진=서울기록원 홈페이지 |
대전도시재생센터에 따르면 도시재생이 이뤄진 마을 곳곳에는 메모리존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마을기록관 등이 운영 중이다. 물론 큰 역할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 형태가 지속되고 발전된다면 궁극적으로 메모리존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현장에 조성하는 메모리존은 시민기록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근대문화유산에만 국한되지 않고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의 흔적이 남겨질 '기록의 확장'의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시민기록관을 총괄하고 관리해줄 컨트롤 타워 격인 대전기록원 설립까지 한 호흡으로 가져가는 장기 플랜도 제안했다.
곽건용 한남대 기록관리학과 교수는 "기록문화가 시민사회로 확산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모리존과 마을기록관이 조성된다 해도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지역과 결합해 지속성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학생과 마을 사람들을 '아키비스트(archivist)'로 양성하는 대전시의 소프트웨어도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마을부터 시작해 작은 단위의 구청과 시에도 행정기록물이 넘친다. 이 기록물들이 과연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대전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일제강점기와 철도, 대전엑스포와 대덕특구에 그쳤다. 여기에 대전사람들의 페이지가 더해진다면 풍족한 유산을 남길 수 있으리라. 기록은 역사의 궤적이고 인류의 성장보고서다. 대전 100년의 히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끝>
이해미·김성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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