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 충남대 교수 |
출근해서 이메일을 열어보니, 이 년 전 연구비 받고 논문실적이 없으니 연구비를 반납하라는 공문이 있었다. 더불어 월급에서 반환액수를 원천적으로 징수하는데 동의하라고도 했다. 반납해야할 액수도 부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참담했다. 조교나 학생들에게 도무지 면목이 없었다. 물론 내가 학자로서 게으르고 빈둥거린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 모처럼 생겨난 자유를 밀린 공부에 나름 매진 중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두루 읽어댄 결과물을 국제저널에 투고했으나 불행하게도 게재를 거절당했던 것이다. 부당하다 느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커서 이후 그 논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실패는 언제나 아프다. 연구비반납 공문은 내게 실패를 상기시켰기 때문에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오전에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 잠시 시간 내어 오랜만에 집에 온 막내둥이를 치과에 데리고 갔다. 스케일링만 할 참이었는데, 웬걸, 충치가 몇 개씩 되고, 사랑니 발치까지 권유받았다. 연구비 반환 때문에 예민해져있는데, 목돈이 들어가게 생겼으니 확 짜증이 났다. 차마 막내둥이에게 짜증내지 못하고, 그저, "이빨 좀 제발 잘 닦아라…" 고만 말하고 간신히 짜증을 삼켰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잠시 스케일링만 할 요량으로 유료주차장에서 주차했는데, 예측과 달리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린 것이다. 평소 같으면 순순히 부담할 주차비도 너무 많아 보였다. 게다가 내 차 앞뒤로 차들이 바싹 주차되어 있어 차 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쓸데없이 화가 치밀었다. 난 주차요원 아저씨에게 기어코 화를 내고 말았다.
"차들을 이렇게 주차 안내하면 제가 어떻게 차를 빼욧!" 아저씨는 처음엔 맘씨 좋은 목소리로 "걱정 마, 걱정 마. 내가 잘 빼게 해 줄게"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 마디 더 궁시렁댔다. "주차비는 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에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망정이니 내 찌그러진 얼굴을 그 아저씨가 못 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돈을 받은 아저씨는 그제서야 억울했는지 대뜸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아줌마 같은 동생이 있어. 왜 나를 무시해!" 그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저 화가 났을 뿐인데, 아저씨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제가 언제 아저씨를 무시했어요?" 나는 맹세코 아저씨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저씨에게 화를 낸 것은 사실이었다. 난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냉큼 꼬리를 내리자 아저씨는 마음이 풀렸는지 내가 차를 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다만 옆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지켜본 막내에게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창피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막내둥이를 유성온천역까지 데려가 주는 동안 내내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구나. 막내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른이 어른답지 못했으니. "인간은 파괴되지만 패배하지 않는다"고 헤밍웨이처럼 허풍떨건 없다. 다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창피하고 참담했어도 여장을 추슬러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 온 산을 덮은 신록처럼 다시 시작이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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