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조선 시회,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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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조선 시회,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4-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요즈음 문인이 많다보니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문예지마다 경쟁하다시피 등단시켜 염려되는 바가 없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라 생각된다. 국민 모두가 시인이 되면 어떠랴. 서로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 아닌가.

문인은 혼자서도 공부하지만 집단학습, 합평회 등을 통하여 부단히 절차탁마(切磋琢磨) 한다. 합평회를 처음 경험한 것은 학창시절이다. 몹시 낯설어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쓰다만 초고를 남에게 내보이는 것도 그렇고, 평가 듣기도 난감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작품에 왈가왈부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토론 또한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논어 학이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무엇이랴.

모여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형태의 문학공연, 시낭송, 시화전, 문학기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자신과 사회를 보다 양질의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쩌면 태고시절부터 있어 온 일인지 모른다. 서로 달리 표현되지만 멋스러운 행태를 흠모하고 따르려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선 본능이기 때문이다. 조선회화 도록을 살피다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학인 모임을 본다.

오랫동안 문화는 양극 지향성이 있음을 강조해왔다. 좋은 문화는 좋은 쪽으로, 나쁜 문화는 나쁜 쪽으로 나아가려는 속성을 말한다. 그렇다고 무한정 달리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방향전환 한다. 자정능력이다. 그것은 이성이기도 하고 감성이기도 하다. I. 칸트가 주장하는 오성의 힘 일수도 있다. 성찰 능력의 산물이다.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 추구요, 즐거움을 마주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는가? 그 중 하나가 아름다움으로, 미적 쾌감을 얻는 심미적 감각 본능이다. 아름다움의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작가는 혼신의 힘을 다한다. 때로는 차등을 두어 품격이라고도 한다. 고품격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스스로 높은 품성을 지니지 않고는 고품격이 만들어 질 리 없다. 고품격을 즐기려는 욕구는 누구나 다르지 않다.

조선 영·정조 시대를 문예부흥기라 부른다. 선비문화가 고품격문화로 간주되었다. 어디서고 사람 행세 하려면 시를 읊조릴 줄 알아야 했다. 시 짓지 못하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작뿐이 아니다. 붓글씨는 기본이고,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모여서 시문을 즐기고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세평을 나누기도 했다. 경승지 돌며 산수 즐기는데 음주가무가 빠질 리 없다. 그 것이 시회이다.

여항문학(閭巷文學, 委巷文學, 中人文學)을 대표하는 시회가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이다. 처음엔 옥계사(玉溪社)라 했으며 동인은 13명이었다. 많을 때는 참가자가 73명에 이르렀다 한다. 모일 때마다 지은 시에 서문과 발문을 붙여 시첩을 만들었다. 참석자 숫자만큼 필사하여 각자 간직했다고 한다.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참석하면 그림도 곁들였다. 기념하기 위해서다. 지금 같으면 수도 없이 사진을 찍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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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그림은 김홍도(金弘道, 1745 ~ ?, 화가)가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32 × 25.5㎝, 종이에 수묵담채, 1791, 한독의약박물관)'이다. '송석원'은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서당 훈장 천수경(千壽慶 ? ~ 1818, 학자, 시인)의 집 울안에 있는 언덕이다. 그림은 1791년 음력 유월 보름날 야간 모임을 그린 것이다.

집 아래 꽤 넓은 개울에 물이 흐른다. 사립문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버들, 반 쯤 보이는 초가 주위로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수종이 퍽 다양했던 모양이다. 서로 다르게 그리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물안개 자욱한 숲 위로 보름달이 얼굴을 내민다. 예사롭지 않은 풍광이다. 송석원이라 이름 붙인 것은 암벽과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 전한다. 그림에 보이지 않으니 송석은 모두 생략한 모양이다. 언덕 가운데 촛대가 하나 서있고, 개다리소반에 술병과 주발이 놓여 있다. 조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시와 술, 보름달과 술만으로도 환상적인 낭만과 멋이 울어나지 않는가? 그 주위로 분위기에 도취된 9명의 동인이 자유분방한 자세로 둘러있다. 난잡하거나 흥분돼 보이지 않는다. 무엔가 흠뻑 젖어 음미하고, 황홀경에 취한 모습이다. 김홍도의 여타 작품이 그러하듯 인물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화제는 미산옹(眉山翁, 眉山 馬聖鱗 1727-1798)이 썼나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더운 밤

구름과 달 아련한데

붓끝 조화에

놀란 이 가물가물 하네

(庚炎之夜 雲月朦籠 筆端造化 驚人昏夢)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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