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게 돕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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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게 돕는 사람

  • 승인 2020-04-16 13:28
  • 신문게재 2020-04-17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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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낙준 의장주교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는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밤새 제 온몸이 아팠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부모도 자녀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어지럽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부모님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부모로부터 매 순간 긴장에 더하기 긴장으로 사는 아이들은 움츠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밖으로 죽죽 뻗어 나갈 시간에 안으로만 숨을 죽이는 몸이 깊이 아프게 된 것입니다. 아이가 아프니까 어른인 제 몸이 심하게 몸살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이의 참고 견딘 아픔이 통째로 제게 와 닿은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말이 필요한 것이기보다는 아이 곁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어른인 제가 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전부가 머무는 것뿐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에 아버지와 깊은 속 얘기를 하고 싶고 어머니에게 만나고 있는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동생과는 더 친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집안에 오래 있는 동안에 식구들과 함께 마음껏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집안에서 아버지 역할놀이도 하고 싶고 어머니 역할놀이도 하고 싶고 동생 역할놀이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버지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고 어머니 마음속에도, 동생의 마음속에도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나의 속으로 들어와 내 속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각각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집안에 있다 보니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동안 모든 식구가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생명을 잃었고 몸을 아프게 했고 익숙함을 어색함의 불편함을 몰고 온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제가 이 집의 식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식구들 속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 영혼의 상태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나의 고유한 인간성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한집에서 사는 식구는 서로 어떤 관계여야 할까요. 서로가 각각 고요한 인간성을 자라게 해 주는 관계이지 홀로 외롭게 방치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집에서는 식구들 서로가 고요한 인간성을 만드는 중요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충만하게 사랑을 받게 해야만 고요한 인간성을 지니게 됩니다. 충만한 사랑을 받으면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됩니다. 신뢰는 수많은 작은 신뢰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큰 신뢰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신뢰는 그렇게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일 때 신뢰를 쌓는 삶의 방식을 익히지 못하면 매 순간 무력함을 경험하게 돼 의미상실과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합니다. 악마가 자신을 짓누를 때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신뢰로 쌓은 삶의 방식으로 이미 훈련받은 사람일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 소년의 말을 듣고 말없이 한참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그로 인해 내 온몸이 밤새 아팠습니다. 그로 인해 그 소년은 다음 날 작은 웃음을 제게 지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 소년과 저는 작은 신뢰 쌓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을 끄집어내려면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고통은 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희망을 끄집어내는 첫 작업입니다. 그래서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년이 아프면 어른도 아프며 견디어야 합니다. 아이 앞에서 어른이 견디지 못하면 부끄럽게 됩니다.

아이에게 큰절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아픔을 잘 견디어 내셔서 부모 역할을 다 하는 어른이 되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19가 준 집안에서의 신뢰 쌓기이기를 바랍니다./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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