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 |
코로나19 전투에 글로벌 슈퍼컴퓨터들이 속속 나서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에서 보유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인 '서밋'이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감염 확산 모델 연구, 바이러스 표면 구조와 특성 이해, 유전자 코드 기반의 신약 후보물질 설계, 치료제·백신 후보물질 탐색 등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슈퍼컴퓨터가 쓰일 분야가 많다.
바이러스는 자가 복제 능력이 없어서 숙주 세포에 침투해 숙주 세포 내의 기능을 이용해 복제한다. ORNL 연구팀은 인간 세포 침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의 활동을 저해하는 후보물질 찾기 위해 8000종의 화합물을 대상으로 분자 도킹 계산을 '서밋'에서 수행했다. 7종의 후보물질 선별했고 후속 실험을 통해 약효를 검증할 예정이다.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슈퍼컴퓨터 '퀄츠'도 코로나19 대응에 쓰이고 있다. LLNL 연구팀은 '퀄츠'를 활용해 약 2600만 종의 화합물 중에서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후보물질을 찾는 연구를 수행했다. LLNL의 또 다른 연구팀은 사스에 결합하는 항체 정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하는 항체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미국 텍사스 첨단 컴퓨팅센터(TACC)의 세계에서 5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 '프론테라'도 코로나19 참전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고의 연구팀은 '프론테라'를 이용해서 코로나바이러스 표면의 2억 개 전체 원자를 모델링했다. 인간 세포 표면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세포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웨스트 플로리다 대학교의 연구팀은 '프론테라'을 이용해 항공기 내에서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를 연구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슈퍼컴퓨터 '매드그라프4'도 코로나19 전투에 나섰다. 인간 세포 안으로 침투한 바이러스는 자신을 복제할 때 '프로테아제'라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필요로 한다. RIKEN 연구팀은 매드그라프4를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프로테아제 구조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필자가 속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세계에서 14번째 빠른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도 코로나19 전투에 참전했다. KISTI 연구진은 약 2만 종의 기존 약물 중에서 코로나19 프로테아제의 억제제로 쓰일 수 있는 후보물질을 찾는 계산을 누리온에서 약 3주간 수행하고 초기 결과를 켐아카이브(ChemRxiv)에 공개했다. 또 KISTI는 코로나19 백신 또는 치료제 개발과 관련해 슈퍼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국내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해 슈퍼컴퓨터 5호기 자원 상시 신청·접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누리온을 긴급히 투입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이번 코로나19처럼 신종 전염병이 매년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시간 단축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이번 코로나19 참전 경험을 계기로 각 국의 슈퍼컴퓨터는 신종 전염병 신속 대응에 더 효율적인 도구로 변신할 것이다. 우리도 산·학·연·정 협력을 강화하는 등 '슈퍼컴퓨팅 기반 신종 감염병 신속 대응 모델' 마련이 시급하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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