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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도 '평일 오후 6시부터는 조용히 해달라', '주말 낮에도 조용히 해달라'는 등의 아랫집 민원은 여러번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를 키우는 윗집 거주자라는 '원죄'로 인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자칫 시비가 붙거나 아이들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올해는 더 조심스럽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개학연기와 외출 자제로 인해 2월 중순 봄방학 때부터 지금까지 두 달 가량을 아이들과 함께 전쟁같은 '집콕 생활'을 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면서 필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뛰지마', '조용히', '안돼'였다. 층간소음 걱정 때문이다. 학교는 휴교하고, 학원들도 쉬고, 재택근무 하는 사람도 늘어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올해 1월 층간소음 분쟁 민원은 875건이었지만, 2월은 1422건으로 한 달 새 547건(62%)이 늘었다.
층간소음 갈등이 폭행, 칼부림 등으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년 5월 세종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어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아파트 15층에 사는 주민이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래층 주민이 승강기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힌 것. 같은 해 11월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에 사는 부부를 칼로 찌른 후 본인도 목숨을 던진 사건도 있었다.
윗집의 과도한 층간소음으로 인한 피해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나 민사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랫집 주민 또한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 층간소음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 항의했다가 모욕, 주거침입 등으로 고발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윗집 가족에게 앙심을 품고 수시로 그 집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방법으로 괴롭혀 오던 아랫집 사람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판례가 있다. 층간소음이 심하단 이유로 술에 취한 채 윗집 주민을 흉기로 숨지게 하고, 그 처와 부친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아랫집 주민에게 징역 20년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또 아랫집에서 1년 넘게 직접 항의하고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아랫집에 위자료와 병원 치료비 등을 청구한 윗집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사례까지 있다.
현관문 앞에서 직접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행동은 주거침입죄 성립의 가능성이 있으며, 보복성으로 우퍼스피커를 설치해 이웃에게 고의로 소음을 발생시킨다면 경범죄에 해당해 경찰신고도 가능하다.
늘어가는 갈등에 최근 정부가 직접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웃사촌'이 '원수지간'이 되지 않으려면 윗집이든 아랫집이든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공동체 문화가 필요하다. 현옥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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