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마동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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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마동석이 되고 싶다

  • 승인 2020-04-14 18:52
  • 수정 2020-06-30 11:31
  • 신문게재 2020-04-15 18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배우 마동석 씨의 몸이 갖고 싶다. 손으로 벽을 짚고 눈만 한번 위로 뜨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중압감, 누구든 부딪히면 고통을 선사할 거라는 예감이 차오르는 팔뚝을 갖고 싶다. 성별을 뛰어넘기 어렵다면 '사랑과 전쟁'에 시어머니 역할로 자주 출연했던 배우 서권순 씨도 좋다. 매서운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싸울 수 있을 테니. 이기고 싶다, 앞집을. 아니, 싸우고 싶지도 않다. 존재만으로 제압하고 싶다.

전투력 향상을 꿈꾸게 하는 앞집 사람은 드웨인 존슨도 데이브 바티스타도 아니다. 18~20세로 추정되는 남학생 무리다. 지역 사립고 학생으로 알려진 이들(임차인은 1명이겠지만 놀러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이 작년 6월 거주를 시작하고부터,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불쾌함과 불안이 마음에 노크를 해온다.

그들은 흡연 후 담배꽁초로 다른 거주자의 에어컨 실외기 주변을 더럽히면서 새벽 두 시에 노래 실력을 발휘하는 히든싱어다. 배달음식 잔해가 담긴 비닐봉지를 며칠째 복도에 내놓아 자기 집의 청결의 유지하는 대신, 맞은 편 거주자의 출근길에 냄새와 불쾌함을 빚어내는 조향사가 될 때도 있다. 그들은 낭만도 전하고 싶어 한다. 놀러오는 친구들은 욕과 환호성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문을 열어 인생이 얼마나 신나는지를 알려준다. 지난주에는 복도로 난 현관문을 열고 음악을 틀기도 했다. 현관문 꼭 닫고 사는 이웃의 귀에도 그들만의 감성은 전해졌다.

시끄러워서 잠을 깨고 냄새에 시달린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보복이 돌아 올까봐 무섭다. 자기 집 화단에 담배꽁초 버리는 남학생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했더니 지속적인 이물질 테러가 돌아왔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이 밖에 있을 때 문도 못 열고 산지 일 년이 다 돼 간다. 마동석 씨 몸이라면 문 열고 인사 한번 하는 순간 혼자 끙끙거리며 괴로울 일이 다시는 없을 텐데. 그 생각이 순간순간, 시끄럽고 냄새나는 일을 당해 열불이 올라오는 날이면 전투력 넘치는 몸을 갖고 싶게 한다.

코믹스에 변신하는 캐릭터가 많은 건 타인을 괴롭히는 악이나 불쾌함이 세상에 그만큼 넘쳐나기 때문일 테다. 평상시 보통 체격인 헐크는 화가 나면 거대한 초록색 몸으로 변해버린다. 억만장자 재벌의 일상을 사는 배트맨은 싸워야 할 땐 천문학적 재산으로 구비한 첨단 수트와 무기로 변장한다. 학생인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을 이용하는 능력을 부여받고 그에 맞는 전투용 복장을 입는다. 그렇게 이들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악에 맞서 싸운다. 매일 전투용 수트를 입거나 초인적인 몸으로 사는 건 일상이 불편하다. 코믹스의 캐릭터들도 그래서 필요할 때만 변하는 걸 택했을 테다.

평범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전투적이지 못한 몸과 완벽하지 못한 언어능력의 소유자로서, 일상 속 불편과 벌여야 할 승부는 오히려 자신과의 싸움이 돼 버렸다. 인내심의 한계치를 늘리려 노력해 본다. 타인의 수면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큰 소리를 내고, 먹고 남은 음식물을 며칠째 내놓는 사소한 악행에는 상상 속의 전투로 맞서볼 뿐이다.

사실 마동석 씨의 몸보다 더 갖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이기고 싶지도, 변신을 꿈꾸고 싶지도 않은 세상이다. 혹시 예민한 반응일까 피해자가 스스로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참다 참다 폭발해서 괴물이 될까 괴로워 할 필요 없는 세상. 피해를 그만 보고 싶은 마음에 치킨이라도 사서 벨 누르고 매너 있게 살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빈곤하지 않아서, 나의 행동으로 남이 괴로울 수 있음을 알고 조심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갖고 싶다, 정말.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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