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세월이 40년이 경과했는데도 청순한 여고생의 목소리가 지금도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이 때가 바로 대전여자고등학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대전여자고등학교는 까만 베레모에 이른바 '몸빼' 바지가 교복이었는데 당시 여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국의 명문고였다.
그런 명문고에 교직생활 신출내기인 내가 초임지 충남 덕산고등학교에서 어려움 없이 들어갔다. 같이 근무하던 이용만 선배가 1년 먼저 가시더니 학교장께 어떻게 말씀드렸는지 그냥 오라 하시기에 별 생각 없이 마음 결정을 내렸다.
그 당시 나는 초임 발령이라서 경력도 없고, 키가 작아 난쟁이라는 별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시절이었는데 충남에서 대전 들어오기는 보통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전에 있는 명문고로 불려왔으니 얼떨떨한 것 그 자체였다.
할애 내신 종이쪽지 한 장으로 뽑혀간 셈이었으니, 그 이유가 전국에서 키가 제일 작은 난쟁이 교사라서, 아니면 좀 괜찮은 교사로 낙점을 받아서였는지 아리송할 때가 있었다. 가자마자 무슨 대가(代價)인지는 모르지만 3학년 담임이었다.
그 당시 대전여고 학생들 수준은 전국의 명문고답게 어느 반을 들어가도 중학교 때 성적이 1, 2등 아닌 학생이 없을 정도 수재들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기도 했지만 별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어서 수업 시간에 코피 흘리는 학생이 평균 둘 정도는 나왔다. 아마도 밤잠 못 자고 공부하는 열정이 만들어 놓은 결과였을 것이다.
여학생들이라 수업 중 코피를 쏟으면 호들갑을 떠는 야단법석들이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빙긋이 태연자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나더러 선생님은 피만 보면 좋아하는 미소가 나오니 드라큘라(흡혈귀)가 아니냐고 했다.
내가 지은 미소의 의미는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대견스럽고 기특해서 지은 표정이었는데 학생들은 흡혈귀의 속성으로 규정지어 내린 장난끼 어린 언사였다.
방과 후 자율학습시간이나 야간자율 학습시간에 학생들이 문제집을 들고 와,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라고 할 때는 끔찍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는 가지고 온 문제집 참고서를 펼쳐 놓고 질문을 하는데 이것은 한 두 문제가 아닌 책 한 권을 다 풀어줘야 하기 때문 때문이었다.
수재들 머리로 해결이 안 되는, 장마다 접어놓고 체크해 놓은 문제가 몇 문제가 아닌, 문제집 한 권 정도였으니 진땀이 나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바람에 고3 수험생 이상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질문을 못 받거나 실력 없는 교사라 평판이 돌면 학교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머리 좋은 수재들은 극성을 부린다 할 만큼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일부 선생님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뜨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내가 그런대로 명문고 학생들한테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졸업할 때까지 고학으로 하루 3시간, 4시간 수면에 코피 흘리며 중?고학생들 4파트 지도하는 일과로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안 다뤄본 문제집이나 참고서가 없을 정도였으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질문 받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학생을 가르치고 공부시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선생님들을 공부하게 만들어 실력 있게 하는 것도 역시 학생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의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선생님 같은 학생들 덕분에 학생들 이상으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준입시생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도 대덕고등학교 근무할 때 대전여고 졸업 30주년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눠준 졸업생명단 방명록 수첩을 보니 미국 유명 대학교수로 가 있는 베레모의 주인공도 있었고 우리나라 각계 각처에서 동량지재로서 그 존재가치를 뽐내는 '몸빼바지' 주인공들이 많았었다.
지난 얘기지만 대전여고가 화재 사건으로 힘들었을 때에도 몸빼바지의 졸업생 주인공들이 합심일체가 되어 모교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고 힘이 돼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몸빼바지들의 모교 사랑의 마음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라고 하던 주인공들이 까만 베레모에 몸빼바지로 교복을 입었을 때는 나를 밤잠 못 자고 공부하게 만들더니, 지금은 전국 도처에서, 또는 세계 유명대학이나 주요 기관에서 교수 또는 중견 인물로서 우리 한국의 국위 선양을 위해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반쪽 같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 삶의 의욕을 잃고 갈팡질팡할 때에도 30년이 지난 세월이었지만 ? 발신인 없는 택배 '보약박스를 보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정길순 교사도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하던 몸빼바지의 주인공이었다.
을지병원 장례식장 아내 영결식에도 어디서 듣고 왔는지 "선생님 힘내세요"하며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송여옥도 대전여고 내 반 반장이었고, 김미령, 윤석숙을 비롯한 이지숙, 양명희, 윤미숙, 양은옥, 설정옥, 정숙원도 까만 베레모에 몸빼바지의 주인공으로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라고 하던 인물들이었다.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라고 하던 몸빼바지에 베레모를 썼던 그 주인공들이 공부만 잘한, 가슴 없는 기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뒤에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따뜻한 가슴도, 눈물도, 모교애(母校愛)도 투철한 국가관도, 지닌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었다는 것을….
내 어려웠을 때 손을 꼭 잡아주며 "선생님 힘내세요"하던 제자들이 좋은 머리에, 따뜻한 가슴에, 눈물에, 모교애(母校愛)에, 나라 사랑의 마음까지 남달랐으니 내 어찌 몸빼바지의 주인공들을 잊을 수 있으리오!
명문고는 공부를 잘해 명문대 많이 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공부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사는 졸업생들이 많은 학교가 진정한 명문고라는 사실을 늦으막에 깨닫게 된 셈이다.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 - 베레모를 썼던 몸빼바지를 입었던 여학생 - 이 환시로, 환청으로, 되살아오는 느낌이다.
같은 말인데도 몸빼바지 시절은 그 한 마디가 '진땀 빼는 끔찍한 부담'으로 느껴지더니, 지금은 '식사 같이 할 수 있는 시간 있느냐?'의 의미로 용도 변경을 했으니 말의 위력에 감탄할 뿐이다.
물씬한 사람냄새에 따듯한 가슴까지 느끼게 하는 몸빼바지 제자들에게 느꺼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같은 말인데도 뉘앙스가 다른 말로 쓰는 몸빼바지 주인공들로 바뀌었으니 이것은 세월과 몸빼바지의 어느 쪽의 요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했던 베레모와 몸빼바지의 명문고 주인공들이여!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 내음이 몸빼바지에 스민 얼룩이 되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 소중한 게 구름 탄 비룡(飛龍)의 용광로 입김이 되어 차가운 세상 오래오래 덥혔으면 좋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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