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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 지음│박성훈 옮김│민음사
'검다'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얼마나 될까. 어둠, 밤, 석탄, 잉크, 검은 개, 음흉함, 암흑의 군주, 검은 대륙, 적과 흑, 블랙 유머, 암흑 물질, 고래, 검은 표범, 흑인…. 프랑스어로 검은색을 의미하는 단어 'noir' 앞에서,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21편의 사유를 길어올렸다. 깊은 어둠의 색이 도출해낸 자전적 이야기. 『검은색: 무색의 섬광들』은 그 산문들의 묶음이다.
첫 번째 산문 「군대의 검은색」이 검은 이야기들의 포문을 연다. 병장 시절, "어둠을 책임지는 관리자"로서 취침을 지도해야 했던 내무반장의 이야기다. 일산화탄소 중독을 염려해 석탄 난로를 끈 "애국적인 밤의 추위" 속에서 한 병사가 조니 알리데의 샹송을 읊조린다.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 외부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상황의 아이러니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떠오르는 서정성. 바디우의 산문은 이런 방식으로 유년 시절의 깜깜한 방, 손가락에 묻은 잉크 같은 색의 기억을 정치와 예술, 과학과 철학의 영역으로 불러온다.
바디우는 검은색에서 변증법 또한 발견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는 "검은색의 변증법"은 무색(無色)으로서의 검은색과 모든 색의 뒤섞임인 흰색 사이의 내적 논리다. 파시스트의 검은 셔츠로부터 아나키스트의 검은 깃발을 분리하는 논증에서는 바디우가 일생 동안 견지해 온 '붉은색'의 정치적 의미가 도출된다. 마지막 산문 「백인들의 발명품」은 '백인' 철학자로서 흑인 운동에 대해 쓴 글이다.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부제 그대로 '무색의 섬광들'이 번쩍인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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