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3강 絶纓之宴(절영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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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3강 絶纓之宴(절영지연)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0-04-07 10:3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13강 : 絶纓之宴(절영지연) : 잔치자리에서 갓끈을 끊다

이 고사(故事)는 일상에 많이 회자(膾炙)되는 고사성어는 아니다. 그러나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값진 교훈을 주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글자는 絶(끊을 절), 纓(갓끈 영), 之(어조사 지), 宴(잔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은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이며, 초(楚)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로, 출처는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의 복은편(復恩 은혜를 갚음)에 수록(收錄)되어 있다.

본 고사는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주거나, 남을 어려운 일에서 구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보은(報恩)의 가치를 깨우쳐주고 있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투월초(鬪越椒)의 난(亂)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궁중에서 성대한 연회(宴會)를 베풀었다. 그리고 왕은 애첩(愛妾)으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낮부터 시작된 연회(宴會)는 밤까지 계속되었고, 신하들은 이 연회를 온몸으로 한참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면서 연회장의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모두들 놀라 불을 밝힐 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불현듯 왕 애첩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애첩은 어둠을 빌어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자가 있어 그자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면 그자가 누군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왕에게 고(告)하였다. 그러나 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지시하고는 오히려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내가 그대들에게 술을 하사하여, 흠뻑 취해서 실수하게 한 것인데. 내가 어찌 그대(애첩)의 정절을 드러내기 위해, 신하에게 모욕을 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왕은 바로 신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갓끈을 모두 끊어라. 갓끈을 끊어버리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不歡)"라고 명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렸고, 이윽고 불은 다시 켜졌으므로 여흥은 더욱 흥겹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연회는 모두를 만족하게 해준 뒤 왕이 생각했던 대로 잘 마쳤다.

이로부터 3년 후 초(楚)나라는 진(晉)나라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투과정에서 초나라 장왕이 진나라에 완전 포위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장웅(蔣雄)라는 장수가 나타나 목숨을 걸고 싸워 장왕을 위기에서 구하여 무사히 포위망에서 벗어나 생명을 건졌다. 그리고 결국 진(晉)나라를 격퇴하는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이 칭찬하며 상(賞)을 내리려 하자 장웅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3년 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애첩에게 갓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대왕의 은혜로 죽지 않고 살았으니 소신 목숨 바쳐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부하의 실수를 용서한 덕분에 부하는 그 은혜에 감동하여 더 큰 충성으로 헌신한 것이다.

이 사건은 성범죄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왕은 작음(개인)보다 큼(국가)을 보았다.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고 엄격히 처벌하는 처사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했던 것이다. 위법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 너그럽게 대하는 자세 또한 필요한 것이다. 왕은 대의(大義)를 위하여 신하의 잘못을 덮고 관용으로 인간과 국가관리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용기, 관용, 정의, 과단성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분노를 참아내는 모진 인내(忍耐)가 필요하다. 인내한다는 것이 권력자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을 인(忍)자를 보면 마음심(心)자 위에 칼날인(刃)자가 놓여있다. 곧 심장에 칼날을 갖다 대는듯한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일이다. 한 때의 화를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고한다.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이 시대는 남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남을 헐뜯고,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행위가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다.

요즈음 유행하는 '내로남불'이란말도 우연히 붙여진 용어는 아닌듯하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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