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시기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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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시기심에 대하여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승인 2020-04-07 10:49
  • 신문게재 2020-04-08 19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우송대 송지연 교수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돈이 많은 A가 있다. 돈이 적은 B가 있다. 두 사람 다 돈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A에겐 욕망을 이룰 만한 노력과 조건이 분명하게 있었고, B에겐 그것들이 현저히 부족했다고 해보자.

B는 A에게 시기심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게도 같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교집합이나 공통점이 있을수록 시기심은 더 잘 발생한다.

동창회를 떠올려 보면 쉽다. 알랭 드 보통의 강연이었던가. 우리는 적어도 영국 여왕에게 시기심이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영국 여왕은 시기심이 생기기엔 너무 이상하다고(weird). 그 대목에서 청중은 웃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모두 비슷한 청바지를 입고 비슷한 커피를 마시는 등 거대한 동창회 같은 구석이 있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제법 평등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고는 해도 혈통에 의한 노골적인 계급 구분이 사라졌고, 미디어에선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이자 세계시민을 늘상 비춘다는 것이다.

B는 A와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부족한 노력을 보강할 수도 있고, 너무 다른 조건에 기가 죽어 체념할 수도 있다. 체념도 나쁘지 않다. 아니면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포인트다.

다르다는 걸 정직하게 인정하기 때문에 포기도 체념도 가능한 것이고, 회피와 정신승리에서 때아닌 창의 창발이 일어나 대안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같아지고 싶거나 상대를 뛰어넘고 싶기 때문에 노력을 통한 경쟁과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된 시기심의 건강하고 정석적인 메카니즘일 것이다. 이건 상대와 같아지고 싶은 열망이기도 하다. 평등 또한 근대의 중요한 개념이다.

상황은 똑같은데 B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어떨까. A와 자신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A의 일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그러므로 A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또는 A가 많은 돈을 버는 만큼 당연히 나도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한다고.

평등의식 기반의 시기심이란 이처럼 애초 왜곡된 자기인식과 거기서 비롯된 당위적 욕망을 일컫는 것이다. 다르다는 정직한 인정에서 출발해 같아지거나 뛰어넘고 싶은 열망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다를 게 없으니 당연히 같아야만 하는 시기심.

욕망은 원래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녹록한 것이 아니건만, 이런 부류에겐 누가 대신 자기 욕망을 실현시켜 주거나, A의 밥줄을 끊어서라도 반드시 채워야만 하는 당위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A와 자신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짜왕은 내 자식도 맛있게 먹방할 수 있고, 유튜브 영상 올리기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평등의식 기반의 시기심은 상대를 끌어 내려서라도 나랑 똑같이 만들고 말겠다는 더러운 심보로 연결되기 쉽다.

한 사람에게 자기 욕망을 대신 실현시켜 달라 하기는 어려운지라, 정부나 기업에게 요구하는 일도 잦다.

"이부진 사장님 신라호텔 애플망빙을 더 사먹을 수 있도록 딱 1억만 돌려주세요".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여성의당 총선준비 후원금 모집 광고 문구다. 애플망빙 소재는 차라리 애교다.

부자에게 돈 달라고 요구하는 저 당당한 거지근성도 유서깊고 진부하다. 후원을 자기들 딴에 재치있게 청유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정말로 어이없는 것은 '돌려달라'는 표현이다. 이부진 사장이 여성들의 돈을 강탈해 간 것인가. 원래 당연히 자신들의 돈이라는 얘기로 들리는 표현이다.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돌려달라니.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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