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군사독재에 대한 민주화의 열망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대학 캠퍼스는 취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6월 민주항쟁의 한복판에서 나는 대학 2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벚꽃과 라일락,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가두 시위와 데모에 참석하기 위해 강의실은 텅 비어 썰렁했다. 이것이 80년대 중반의 대학 풍경이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민주화에 대한 소망에 대한 열기로 청춘들은 어디로 튈 지 몰랐다. 계절의 환희와 현실의 어수선함 속에 나는 기숙사 라운지에서 티비를 보았다. 라운지는 시끌벅적했다. 티비에서 가요프로가 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요 톱 10'이었나. 당시 어느 가수보다 김완선은 인기 최고였다. 여태까지 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댄싱 퀸 김완선! 마돈나를 차용한 이미지였지만 어쨌든 몸 놀림이 기가 막힌, 보는 이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리듬 속에 그 춤을'.
'리듬을 춰줘요 리듬을 춰줘요~'. 라운지 소파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혈기왕성한 호르몬을 주체 못해 날뛰는 20대 초반의 여자들은 열광했다. 후렴구 '리듬을 춰줘요'를 부르며 허리를 360도 돌리는 김완선에 흠뻑 빠져들었다. 위로 죽 치켜올라간, 게슴츠레한 눈빛과 한껏 부풀린 머리를 리본핀으로 정수리에 묶고 나풀거리는 치마를 좌우로 흔들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김완선은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그렇게 김완선을 통해 토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리듬 속에 그 춤을'을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30년이 지났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김완선의 세련된 춤과 무대매너. 지금 아이돌 가수들 저리가라였다. 아, 그립다. 김완선의 화려한 춤과 멋진 몸. '리듬 속에 그 춤을'.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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