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관람한다. 한 사람이 지나는 말로 "시화전이 아니라 개인전 같다"라 한다. 전부 묵화 풍이었고, 그림에 낙관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시회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몇 년이 지났다. 커다란 축제장에 가면 곧잘 시화가 내걸린다. 전국의 문인에게 의뢰하여 작품을 공개 접수한다. 당연히 축제와 관련된 글이다. 행사가 끝나면 책으로 출간한다. 축제 중에는 천에 실사한 시화가 행사장 내 빼곡히 걸려 있다. 그저 그런 그림과 거의 일률적인 글씨다. 지나는 사람이 한편이라도 제대로 읽어볼까? 의문이다. 혹 아는 사람이 눈에 띄면 발길을 멈추긴 한다.
행사장 별도 공간에서 시화전이 개최되기도 한다. 더러 둘러보는 사람이 있지만 감동을 갖지는 않는 듯하다. 시화가 인쇄되어 있다. 제법 안목 있는 사람이 작업한 것이겠지만, 크게 눈길이 가지 않는다.
문학회에서 작품전을 열기도 한다. 작품전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다. 전시 작품은 다른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감동이 없다. 환호하는 사람이 없다.
늘 허접한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특별한 아이디어가 동원된 시화전이 있다. 시인 중에 타 분야에 탁월한 예술적 소양을 겸비한 사람도 많다. 시화 자체가 출중한 작품성과 미적 쾌감을 주기도 한다.
시화 그리는 지침이 없다. 그저 시 읽기 좋게 제작하거나, 내용과 관계없이 시적 분위기 살리는 장식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시의 느낌을 전하거나, 시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도 있다. 시를 그린 그림도 있다. 더러 시서화가 하나 된 작품도 눈에 띈다. 배열이나 구도 등 미적 쾌감을 주는 시화도 있다.
자연이나 사물이 아예 시적인 경우도 많다. 날시(raw poem)라 부르기도 한다. 그를 디지털카메라로 포착, 문자를 가미한 새로운 문학 장르로 등장했다. '디카시'라 한다. 언어예술에 영상과 문자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기술이요, 그를 활용한 창작기법이며 새롭게 자리 잡아가는 소통 수단이다.
조선 전기에 선비문화가 있었다. 문인문화가 대부분이긴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고급문화를 선비가 독점했다 볼 수 있다. 글을 읽는 다거나 시를 쓰는 일, 문화예술품, 골동품을 수집하거나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 하는 일 등이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이후 중인들도 적극적인 문화예술 소비층이 된다. 새로운 문화계층의 등장이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시인이 등장하며, 시를 읊조리고 풍류를 즐긴다. 중인 그룹에서 시회(詩會)도 만들어지고, 그를 그림으로 남기려는 시도도 많아진다. 그를 계회도(契會圖)라 한다.
연구자에 따라, 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시의도(詩意圖)라 부르기도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려진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정선(鄭敾, 1676 ~ 1759, 조선 화가)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그림에 글을 넣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쓰기도 하고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시의도는 그림도 잘 그려야 하지만, 시가 읊는 내용을 잘 포착하고 형상화해야 한다. 시의 내용과 일치하는 그림을 최선으로 생각했다. 문학적 상상력과 그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함께 인기 있었던 그림이 산정일장도(山靜日長圖)이다. 산정일장은 당경(唐庚, 1070 ~ 1121, 중국 북송 문인)의 '취면(醉眠)'이란 시 1행과 2행의 앞글에서 따와 합쳐 만든 말이다. 문장을 대상으로 한 그림을 일컫는다. 유명한 문장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요즈음에도 산문의 부분을 발췌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해당한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더 많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아울러 새로운 활로의 개척이 필요하다. 너무 가볍게 일상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단 예술 분야뿐이겠는가? 몇백 년 전 사람보다 성찰, 진지함이 부족함을 종종 느낀다. 내용 면에서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도 아니다. 까닭에 새로운 방향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보다 삶에 진중했으면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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