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수 |
1524년경 스페인 군인들이 들여온 천연두에 내성이 없던 잉카제국은 무너졌다.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된 금과 은은 유럽의 화폐로 사용했고,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며 자본주의가 싹트게 된다. 계몽사상과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은 근대의 시발점이 됐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치열한 전쟁을 지속했고, 전장에서 군인들만 900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1918년 봄에 미국에서 시작된 독성이 약했던 독감은 그해 가을에 전염력이 강하고 사망률이 높은 강력한 돌연변이 '스페인 독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까지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명이 독감에 걸려 사망했다. 전쟁으로 죽은 군인 수보다 많은 사람이 사망한 것이다. 유럽지역보다는 위생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 중에 국가 수준이 낮거나 빈곤율이 높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했다.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독감은 전쟁을 종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이다. 유럽은 몰락한 반면, 미국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최대의 호황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대량생산체제로 생산된 막대한 상품 제고는 기업 파산으로 이어지고, 미국의 대공황이 발생했다.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었던 극단적 전체주의를 가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한다.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서 인류가 탄생한 시점보다 오랫동안 다른 숙주를 대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돌연변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오랜 시간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스페인 독감'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나라별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올해 가을에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한다.
봄에 이 독감을 앓았던 사람들은 '면역'이라는 견고한 선물을 받은 셈이 되는 것이고 가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무증상인 사람 중 일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의 사스 바이러스를 통해 면역을 획득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무증상자를 포함해 70% 정도가 감염돼야 이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반복되는 계절병처럼 매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스페인 독감' 팬데믹이 가져온 공포가 전 세계 경제의 블록화와 보호무역주의의 문제점으로 나타난 것처럼, 현재에도 이러한 현상이 더욱 견고해지면서 나타날 경제의 암울한 그림자는 공포감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과 질병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고 사회, 정치, 경제의 급격한 변화로 인류 문명의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은 4차 산업혁명을 열기 위한 아주 강한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며 상상하지 못할 기술과 의료시스템의 발전이 나타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사회적 개념의 변화를 초래하고 재택근무, 모바일 쇼핑, 온라인수업, 로봇 사용은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제도가 테스트되고 디지털 화폐의 발행 속도가 빨리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학은 개강을 연기하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배재대학교 총학생회와 교·직원들은 배재학당 '1885' 성금 모금 운동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 전달했다. 이러한 작은 힘들이 모여 한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1932년 미국의 세균학자 리처드 쇼프는 바이러스 때문에 감기나 독감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우리는 지금도 매년 예방 백신을 맞고 있다. 인류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며, 의료물자를 나누고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그래서, 반복하지만 발전하는 역사와 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면서도 인류는 언제나 희망적이었고 생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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