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교수 |
이 전시상황에서 ‘레벨D 보호구’로 무장을 하고 최전방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의료진이다.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한 비닐 소재의 가운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착용 후 10분이면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안경을 쓴 이들은 금세 렌즈에 습기가 차고, 얼굴에 맺힌 땀으로 안경은 흘러내려 코에 걸린다.
하지만 안경을 다시 올려 쓸 방법이 없다. 손에 혹여 묻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 때문에 글러브를 낀 손으로 고글을 벗고 안경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땀에 젖은 속옷과 흐려진 시야에 N95 마스크의 답답함이 체력 소모를 부추긴다. KF94 마스크보다 의료용 N95 마스크는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 때 썼던 방독면만큼이나 답답하다. 그저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5년 쓴 스마트폰의 배터리처럼 체력 저하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하지만 이제는 바이러스로부터 전신을 가려줬던 레벨D 보호구의 수량마저 부족하다. 결국 선별진료소 의료진은 코로나19 검사를 직접 수행하는 동료 의사에게 레벨D 보호구를 양보했다. 외과의사들도 1회용 마스크를 양보하고, 20년 전에 썼던 초록색 천의 면마스크를 꺼내 쓰고 수술방을 향한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불평하는 의료진은 없다. 평소 고된 업무로 이직률이 높은 간호사는 국가적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더 힘들고 더 고생하는데도 이직률은 거꾸로 낮아지는 기현상을 보인다. 몇날 며칠을 밤새워 일하다 돌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던 내과 교수의 옆태를 대구·경북의 의료현장을 비추는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봤을 때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평소에는 잊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돌보기 위해 음압 병실로 향할 때 어느 누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발걸음은 환자를 향하는 게 의료진이다. 평소에 수다 떨고 웃으며 함께 일해온 동료지만, 격리 병실로 걸어 들어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등을 맡길 동료만 있다면, 1대100의 싸움도 희망이 있다고 했던가.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치료하는 의료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고 그 자리를 지킬 용기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전국에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참 자랑스럽다.
그런데 대구·경북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집에 가는 걸 포기하고 병원 근처 호텔에 머무는데, 일부 시민들이 감염 우려가 있다며 지속적으로 항의하는 터에 결국 호텔에서 나오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다해 적군과 싸우다 왔는데, 돌아온 고향에서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로 참전용사를 대했다면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까.
모 지자체는 원내감염이 발생한 의료기관을 비난함과 동시에 지역감염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소를 준비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고지전에서 한 번 밀렸다고 해당 군인들을 모두 군법에 회부한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의료진을 더욱 주눅이 들게 하는 건 시민들의 이와 같은 시선과 이를 더욱 부추기는 정부의 행태다.
세계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비결은 엄청난 국방예산의 이유도 있겠지만, 복무자에 대한 국민의 예우와 존경에도 비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부러우면 진다지만, 지기 전에 좋은 건 서둘러 배워야 이길 수 있다. 미국인들이 군인과 마주치면 건넨다는 감사의 표현 "Thank you for your service.(복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장에서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의료진에게도 잘잘못에 대한 지적보다 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건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다. "고생이 많다","우리 모두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 달라","우리는 당신들을 응원한다" 등 이런 응원과 격려가 의료진에게는 바이러스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슴을 펴게 하는 소중한 백신이다.
끝으로 신종코로나를 처음 보고한 후 사망한 중국 우한 중앙병원의 의사 ‘리원량’을 애도한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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