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도시공사 유영균 사장 |
며칠 뒤 지나는 길에 다시 보니 노랗고 파란 비올라와 팬지꽃이 활짝 펴있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상황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한 쪽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이 당연한 듯 봄을 심었다.
예년 같았으면 무심하게 넘겼을 이 광경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너무 퍽퍽한 최근의 세상사 때문이다.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초비상이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골목상권부터 금융시장까지 전방위적인 불안을 보인다.
우리나라만 곤경에 처한 것은 아니다. 질병의 발원지인 중국이 입은 내상(內傷)은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올림픽 개최라는 대형 이벤트를 준비 중이던 일본의 타격은 더 크다.
코로나19를 아시아사람들의 질병으로 치부하면서 동양인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넘치던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 프랑스, 영국을 거치며 북진(北進)에 가속도가 붙었다.
코로나19가 중국발(發)이라면 증시폭락은 미국발이다. 미국증시의 하락 폭은 지난 2008년의 모기지 사태를 능가한다.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두 축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전문가들은 경쟁적으로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폐쇄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불허하면서 자유무역이 흔들릴 조짐까지 보인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이 이렇게 글로벌한 이슈까지 다 걱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리의 의지가 반영될 리도 없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생년(生年)에 맞춰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고 손 소독제를 열심히 바르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체감하는 것은 세계 경제와 국제정세의 변화가 아니라 나와 내 주변에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쳇바퀴처럼 흘러가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불편과 불안감이다.
맞벌이 부부의 입장에서는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 건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발길이 뜸해진 손님이 다시 모이도록 하는 것이 당장 급하다.
고작 1년에 한두 번 찾아갔던 공연장과 전시장이었지만 셔터가 내려진 지 한참이고 '사회적 거리' 유지할 수 없는 극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갈 곳이 없어 TV의 트로트 오디션 재방송을 몇 번째 보는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에는 습관적으로 스포츠 채널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시청했지만, 개막일정이 전면 연기됐고 정상적인 시즌 운영도 불투명하다.
늦은 저녁 시간에 동료들과 둘러앉아 소주잔을 들고 외치던 낯간지러운 건배사가 그리워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연일 뉴스와 신문지면에서는 굵은 화살표가 곤두박질치는 그래프를 보여주며 세계 경제를 걱정하고 각국 지도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비추지만,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우리의 진짜 관심사는 소소한 일상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이 누리던 평범했던 하루가 사실은 가장 큰 행복이었음을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와 질서의 재편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불러왔지만 나 같은 필부(匹夫)에게는 늘 접하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던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의 한 구절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이 어서 회복되기를 소망해 본다.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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