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어쩌면 나타샤가 되지 못한 자야(子夜)의 회한이었는지 모릅니다. 스물여섯 아리따운 기생 진향으로 만나 평생 백석(1912~1996)을 그리워한 대원각 주인 김영한의 러브스토리는 한국문단에 사랑의 수사학이 되었지요. 시공을 초월하여 생명까지도 치환될 수 있는 사랑 그까짓 재산이 무슨 대수겠습니까만 자야를 만나 백석의 시는 드디어 문장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00억보다 귀한 백석의 시 한 줄은 온전히 자야의 사랑이었지요. 그 위대한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오늘날 우리 시인들에게는 끝없는 자긍심과 명예로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에서 가난한 직업 1순위는 시인이라는 한국 고용정보원의 연구결과를 보면서 시인이라는 사실이 머쓱해졌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는 사람과 시인이 직업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동의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하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2015년) 월수입이 18만원으로 예술인 중에서도 가장 꼴찌로 나타나 자본의 논리가 예술을 지배하는 데이터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져 시인은 진짜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시인은 모두 가난하다는 묵시적 동의를 인정해야 만 하는지 망설여졌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문단의 주류인 한국문협과 작가회의에 등록된 문인이 대략 2만여 명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의 기준 적용이 잘못된 것은 대전문협만 하더라도 450명 회원 중 한국문협에 가입한 숫자는 약 30%정도입니다. 다시 전국의 문인수를 역산해보면 족히 6~7만 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직업군에 속하지 않는 명제로는 시의 생산은 정량적이 아니며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 감동의 유기체로서 시인 자신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수요자이며 공급자 참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큰 돈을 벌 수도 있겠구나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경매가 1억 3500만 원, 백석의 '사슴'이 7000만 원이었으나 화가인 김환기의 '우주'는 무려 132억 원이었지요. 혹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만 한다면 인세만 해도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사실 한국문화예술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1961~)은 2016년 집주인으로부터 이사를 가라는 독촉과 함께 문화예술인 근로장려금 신청 대상이 되었다며 아만티 호텔의 방 하나를 일 년 간만 사용하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가 유명 시인의 갑질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난은 시인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영광 시인(1965~)은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라며 세상의 경계를 담담하게 성찰하였고 대부분 문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만의 문학세계에 둔테를 걸어놓고 글을 씁니다. 시는 초고의 영감과 퇴고의 막노동입니다. 일탈이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의 표주박으로 영혼의 샘물을 깃는 일입니다. 그 영혼이 감동과 사랑으로 다가올 때 시는 아름답게 빛나며 오랫동안 진한 향기를 남기게 되지요. 시를 쓰는 일은 마치 꿀벌들이 꽃을 찾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꿀벌은 1g의 꿀을 얻기 위해 하루에 8천 송이의 꽃을 찾아 30㎞를 비행하지만 단 한 번도 꽃의 향기를 상하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시인들도 꿀벌처럼 삼라만상을 둘러보는 견자(見者)가 된다면 천지의 야생화들은 모두 시가 되겠지요.
밀란쿤테라(Milan kundera, 1929~)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라며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세상의 모든 문을 셧다운 시켰지만 무심한 꽃들은 자꾸만 피어납니다. T.S 엘리어트의 시집으로 4월을 맞을까 합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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