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회식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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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회식인생

  • 승인 2020-05-05 10:42
  • 신문게재 2020-03-23 22면
  • 유지은 기자유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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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평생을 회식 속에서 살았다. 적어도 지금의 회사에 다닌 후 그 삶이 회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건 확실하다. 물론 지금까지의 수많은 회식이 아빠에 의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 거다. 좋았던 날도, 도망가고 싶었던 날도, 집에서 쉬고 싶던 날도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회식으로 가득 찬 삶 만들기에 아빠가 동참한 건 분명했다.

당연히 아빠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 말이다. 덕분에 엄마는 남편이 없는 저녁을, 나와 동생은 아빠가 없는 저녁을 종종 맞이했다. 아빠는 다행히도 주말엔 집을 지켰다.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보낸 거다. 물론 여기에도 아주 큰 맹점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잊고 있는 진실, 주말은 본래 이틀이 아니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일주일 중 오직 일요일, 하루뿐이었다는 것! 그래서 더 정확히 말해, 엄마는 남편이 없는 저녁을, 나와 동생은 아빠가 없는 저녁을 거의 매번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도 회식을 하는 인생이 됐으니 이젠 아빠를 이해한다. 어릴 땐 아빠랑 매일 같이 있다는 사장 아저씨가 참 싫었는데 이젠 이런 농담도 던질 수 있게 됐다. "엄마, 아빠가 야식 사 오는 술버릇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아빠의 회식 인생도 새로운 템포로 흘러가게 됐다. 조금 루즈해졌달까. 나이도 들고, 직급이라는 게 올라가면서 일주일 중 회식이 있는 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회식 있음. 없음. 있음. 없음. '퐁당퐁당' 이렇게. 물론 누구나 회식이 급격히 증가하는 연말엔 '퐁퐁퐁퐁'으로 변했지만. 회식 있음. 있음. 있음. 또 있음!



그렇게 아빠의 퇴직 전까지는 매우 무난하게 이어질 거라 믿던 회식 인생이 어째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유예 기간을 맞았다. 언제부턴가 '퐁당퐁당' 거리던 음률이 '퐁당당 퐁당당당'으로 바뀌더니 어느새 '당당당당'이 돼버린 거다. 바로 코로나 때문에!

이젠 아빠가 집에서 밥을 먹는 게 너무도 당연해졌다. 오히려 나머지 가족들의 저녁 단속에 열을 올릴 정도다. 덕분에 난생처음 '아빠와 함께하는 저녁 7연속'을 달성했다.

분명 아빠의 회식인생은 다시 시작될 거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수많은 아저씨들의 전화가 줄 이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일단은 현 상황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그 노력으로 나와 동생은 매주 새 요리를 아빠에게 대접 중이다. 아빠 인생 최초의 경험을 좋은 기억만으로 채우기 위해. 혹시 아는가. 이번의 기억이 앞으론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회식인생을 끝내버릴 계기가 돼 줄지….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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