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담한 50대 후반의 사례입니다. 그분을 어제 또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부도가나고 아무런 희망이 없던 그는 날마다 술을 마시며 울었고 집안의 온갖 집기들을 부수며 또 울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피해 짐을 싸서 나가버리고 혼자서 울부짖고 부수는 날들이 계속되는 중 정신을 차리고 살기 위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아버지마저 안 계셔서 굶기를 일과처럼 살았답니다. 공장에 다니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고 동생들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먹고 살 만하게 되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거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다시 작은 식당을 열어 희망을 키우던 그 분이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식당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또 울고 싶을까요?
김왕노 시인의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라는 시입니다. 아래 열거 된 울음을 몇 번 우는지, 이 울음 중에서 어느 울음으로 우는지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제도 울었다. 슬프지 않은데도 울었다. 울 때가 아닌데도 울었다. 울음 한철이 아닌데도 울 었다. 울다 잠들면 잠들어도 울었다. 꿈속에 나가 울음이 강물을 이룰 때까지 울었다. 내 안 에 수천수만 톤의 울음이 출렁이는 것에 놀라며 울었다. 울려고 태어난 것처럼 울었다. 질 좋은 곡비처럼 찰지게 울었다. 우는 법을 모르며 울었다. 달래도 울었다. 달랠수록 더 울었 다. 달래지 않아도 울었다. 달랠 때보다 더 울었다. 울든 말든 세월은 가는데 울음으로 세월 의 바퀴를 돌리듯 울었다. 울음의 나라에서 온 듯 울음의 백성처럼 울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운 것이 아니라 사실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 전문-
여러분은 어떤 울음으로 우시나요? 어느 울음이 가장 슬프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제가 어떤 울음으로 우는지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막 읽어나갈 때는 슬픔의 감정이 올라왔는데, 끝까지 읽고 나니 왠지 슬픔보다는 후련함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제목에서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마지막 문장 '시도 때도 운 것이 아니라 사실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에서 '그래, 그렇지' 하면서 무릎을 탁 치는 듯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운 것이 아니라 사실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고요, 살짝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울음이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미소가 살짝 지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이 고달프고 힘든 세상을 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각을 깊게 하여 주고 정화 작용을 해 줍니다. 실컷 울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통이 승화되었고 한 단계 깊은 성찰을 했기 때문입니다. 울어야 인간적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울음도 울어본 사람이 웁니다. 울어야할 때 울지 않는 것은 기계와 같습니다. 또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잘 우는 것은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힘을 줍니다. 잘 우는 것도 능력입니다.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우는 것도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어둠' 이라는 커다란 풍선 안에 갇혀서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어려움들과 다른 고통과 겹친 분들은 이중으로 더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따뜻한 봄날이기를 바랍니다.
김종진 여락인성심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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