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임박하면서 각 당이 공천 마무리를 하는 모양새다. 여기저기 불평불만이 터져 나온다. 낙천자들의 볼멘소리야 늘 있어 온 일이다. 그들을 옹호할 이유도 없다. 필부가 논할 일은 아니나 몇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 소회가 따른다.
실제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나서는 자체가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아닌가? 일반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지만, 공천신청서 역시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 가득하다. 그것을 사실로 확신하게 되는 것일까? 자기 암시에 자기도취로 빠지는 것일까? 당위성만 존재한다. 보통 사람은 말하기 낯간지러운 내용도 많다. 자기 확신도 실패도, 살다 보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병가지상사다. 자기 성찰과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 최선 아닐까?
어느새 낙천자의 무소속 출마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당내 공천의 합리화와 민주화가 우선이겠으나, 결과에 순응하는 것도 민주적 과정 중 하나이다. 애당초 무소속이었으면 모를까, 당 소속이면 당의 결정과 절차에 따라야 하지 않는가?
선거 때 웃음은 끝나자마자 사라진다. 진심이 아니란 말이다. 그야말로 안면몰수(顔面沒收)다. 전에 알던 친분이 전혀 없던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한다. 약속 지키지 않는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일반인도 하지 않는 민망한 처세요, 부당한 일이다. 오죽하면 90도 수그리던 허리에 당선되고 나면 깁스한다 혹평할까? 달콤한 말, 화사한 미소가 오로지 자리보전용이 되어서야 될 일인가?
거짓이나 겉과 속이 다름을 경계하는 말은 많다. 그럼에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거나 견강부회(牽强附會)를 일삼는다. 일시적으로 무리나 자신에 도움이 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탈락자 중에는 그런 처세를 보인 사람이 많다. 국민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공천관리자들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든 주목받거나 튀어보려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그들 생각처럼 국민이 만만하거나 어리석은 상대가 아니다.
공복이 지켜야 할 의리는 국민과 지켜야 할 도리이지, 당리당략이나 자신의 입지 또는 사익에 있지 않다. 선출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에 대한 헌신과 국민에 대한 봉사가 우선이다. 그렇게 처신하였는가? 유유상종의 쾌락에 함몰되어 국민을 업신여기지는 않았는가?
한가지, 오랫동안 선거구 지켜온 사람을 임의 탈락시키는 것은 잘못 아닐까? 지역 책임자 선출할 때부터 민주적이었다면 말이다. 더구나 지역과 아무 관련 없는 뜬금없는 사람을 공천하는 것은 의문이다. 국회의원 역할은 국정에 있다. 그렇다고 지역 대표성을 간과할 일도 아니다. 지역대표가 전문성도 겸비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직능대표는 비례대표가 담당하지 않는가? 평소 지역사회 기여가 전무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던 사람이, 선거 때 되어서 표 달라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심사는 합리적인가? 한동안 풀뿌리 민주제 운운하며 상향식 의사결정이 대세를 이루었다. 공천을 중앙에서 심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체성, 기여도, 의정활동능력, 도덕성, 득표력 등 획일적 평가 기준 또한 적절한 것인가? 무엇으로 계량하는가? 사업이야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프리젠테이션이 아니라 일할 능력이 더 중요함은 불문가지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아직도 인사권으로 조직을 통제하려 하는가?
단수 공천뿐이 아니다. 경선 또한 합리적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원을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긴다. 마구잡이로 입당시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당 된 경험도 있다. 친소관계가 우선이 된다. 게다가 형평성,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정할 수 없다. 둘 다 사천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이미 일부 공천결과가 그렇게 나타나기도 했다.
합리적 공천시스템이 먼저이나, 준비는 제대로 되었는가? 평소 바른 행태를 보였는가? 충분히 도덕적인가? 스스로 성찰할 일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법을 존중하여 독배를 들지 않았는가? 악법도 법이다. 결정에 따르는 것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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