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사회재난의 하나인 새로운 감염병 확산은 전염의 과정이 눈에 포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정 기간의 잠복을 거쳐 증상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막대한 공포를 동반한다. 뭉쳐서 함께 대응해야 할 유형의 재난이 아니라 흩어지고 거리를 두어야 안전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딜레마 재난이다. 그럼에도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 총체적 대응을 할 것이 요구된다. 언론은 재난과 대응 정책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매개하는 필수기관의 지위를 가진다. 언론은 재난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혹은 이미 발생한 피해가 제거되고 극복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감염병은 지리적 국경을 쉽게 초월하고 발병의 빈도와 관련이 있는 나라의 일부 지역에 혐오의 심리적 국경이 구축되는 기제로로 쓰인다. 한 공동체 내에서도 특정한 집단에 재난의 원인과 책임을 모조리 귀인 시켜 매도하고 그들을 차별, 공격하는 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재난에 즈음하여 언론이 특별히 정보의 정확성을 검토하고 더욱 신중한 언어로 정보를 전달해야 함에도 오히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 공격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마초적인 취재 관행에 젖은 언론사 중에 면 마스크와 작업용 면장갑을 지급하고 방사능 피폭지역 취재를 지시했다는 전설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구명조끼 한 벌 지급해 주지 않은 채 해상 재난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은 현장의 기자들이 거센 물살과 높은 파고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는 고백은 엊그제 일에 불과하다.
재난 현장의 언론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언론사와 데스크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현장 기자들의 권리다. 언론사와 상급자들은 방사능 피폭이나 전염병의 감염과 같은 사회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에 무조건, 무차별적 기자 투입을 금해야 한다. 언론사와 간부들의 의무다. 현장 언론인과 데스크는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을 이행해야 한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최근 펴낸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재난편, 병원·의료편을 참조해 볼 것을 권한다. 가이드라인은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 많은 기자들과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집필되었고 방송사 소속 변호사와 관계 기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쳤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지침이 주어져 있다.
병원이나 의료와 관련해 보도하려고 한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전염병에 대해 보도하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메르스 의심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감염은 확산 중이다. 언론사는 메르스 환자를 취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 취재할 것인가. 방사능이 유출돼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들어가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취재해야 하는가? 전염병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격리 조치하기 시작했다. 아직 격리되지 않은 접촉자를 찾아 인터뷰하라는 취재지시가 내려졌다. 취재해야 하는가?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은 일반 취재기자들에게도 유용한 지침이 될 줄로 안다. 가이드라인의 기본원칙에 따르면 기자는 환자나 재난 피해자의 입원 치료를 취재할 때 당사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기자는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에 투입되는 최전선의 척후이자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코로나19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는 시민, 의료진, 정부당국자 그리고 취재 전선의 언론인들에게 손 모아 깊은 응원을 보낸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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