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묵 대전세종연구원장 |
우리는 평소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반쯤 망각상태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언젠가 신세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기회 만들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개인 사이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의 불이행은 단순히 일상에 쫓긴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나 사회와 같은 더 큰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의 책임과 의무는 어떻게 이행되고 있을까? 이 역시 대체로 일상적 시기에는 반쯤 망각상태에 있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군복무나 조세 납부의 경우처럼 제도화된 방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이처럼 소극적인 공동체 구성원을 보다 적극적인 구성원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는 공동체의 위기이다.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의 헌신은 가히 폭발적으로 높아진다. 2007년 12월 초순 서해안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국 각지로부터 태안으로 몰려든 자원봉사자 행렬이 그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사고 직후부터 약 6개월 동안 해안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의 수는 연인원으로 약 137만여 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바로 '서해안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되었다. 재난 시기에 위기의 충격을 통해 형성되는 '애타적 공동체'의 전형이 봉사자 행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19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6천명을 넘는 확진자가 이들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사망자도 대부분 이들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 의료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여 입원을 기다리던 중에 변을 당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특히 이들 지역 주민들은 사람 만나는 일 자체를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의료인 단체와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하기 시작했지만, 대구는 그 이전부터 길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의사와 간호사가 자발적으로 대구로 달려가고 있고, 행정인력도 자원봉사자로 보충되고 있으며, 기부금품도 기탁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미 대구·경북을 위한 '애타적 공동체'는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다. 무엇보다도 지자체들이 의료 인력과 의료 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보다 강화해서 대구·경북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구·경북의 고통을 목도하면서도 스스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언제쯤 깨어날 것인가? 친구가 카톡방에 올린 문구다. 힘내라! 대구·경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