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법으로 정하는 만큼 웬만한 큰 도시는 모두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비자로서 이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름과도 같이 도매를 중심으로 시장이 운영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명절 즈음이나 집에 손님이 오는 특별한 날들 외에는 그리 자주 찾지를 못하는 형편이다. 고속도로 등 간선교통 여건이 나은 곳에 입지하다 보니 도심 외곽에 자리하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동차로 이동하려면 웬만한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시장은 도시 중심에 자연스레 터를 잡아 명맥을 유지하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매시장은 외곽 교통목이 좋은 곳으로 쫓겨나기 마련이다. 서울의 가락시장도 유통시설 근대화와 구조개선이라는 명목으로 1980년대 중반 지금의 자리로 물러났고, 인천은 불과 26년 만에 구월동 시대를 마감하고 남촌동으로 이전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는 중이다.
대전에도 두 곳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다. 오정동은 1987년 문을 열었고 노은동은 2001년 개장했다. 중부권 교통 요충지로 물류유통이 유리하면서도 시내 중심권에 위치해 도매상뿐 아니라 소매상에도 유리한 접근환경을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고 있다. 두 군데 모두 대전을 동서로 관통하는 가장 넓고 긴 한밭대로에 접하면서 오정시장은 한밭IC로 천변도시고속화도로와 연결되고, 노은시장은 유성IC 뿐만 아니라 세종과 연결되는 BRT와도 접한다. 간선도로는 그렇다 치고 도시철도 1호선 월드컵경기장역은 월드컵경기장보다 노은시장에서 지척이다. 오정시장도 조만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닿을 예정이다.
혹자는 이렇게도 얘기한다. 도매시장은 간선교통 여건이 가장 좋은 도시 외곽에 위치해 도매기능에 최적화되게 운영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개발시대 ‘속도 강박증’에 기반을 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감히 지적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물류는 거점 중심의 유통체계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시장은 소비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직거래와 협동조합 방식의 소비문화도 점점 확대일로에 있다. 물건을 어디에서 사서 오는지보다는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사가 돼가고 있다.
그렇다면 도심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 원스톱쇼핑이 가능한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해야 한다. 넓은 공간에 농수산물뿐만 아니라 축산, 화훼, 식자재 등 여러 품목을 한 곳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휴식과 문화생활까지도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도시의 명소로 재탄생할 여건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화물차가 들락거리며 물건을 상·하차하느라 위험한 상황에 소비자를 섞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그러나 도매활동이 이뤄지는 시간은 심야나 새벽이고 일반 소비자들은 낮에 집중하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만 잘 이뤄진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종일 열려 있는 핫플레이스로서의 조건을 더할 뿐이다.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일도 만만치 않게 남아있다. 쓰레기가 널리고 악취가 나는 환경은 조속히 고쳐져야 하고 시설물도 방문객을 산뜻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단장해야 한다. 혹여 장애인 접근에 문제는 없는지 외부로부터 눈에 띄는 데 방해 요소는 없는지 야간의 조명은 적절한지 등도 살펴야 한다.
얼마 전 킹그랩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기에 가까운 농수산도매시장에 들렀다. 물건은 이미 동났지만, 횟감과 매운탕거리를 사와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혹여 거래가격 등락폭에 따라 저렴한 수산물을 쉬이 구할 수 있을까 해서 명함을 한 장 받아왔다. 빨리 코로나19가 진정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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