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지난 25일 TV 녹화가 있었다. 모든 행사와 모임이 취소된 상황이다, 사람 모이는 곳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방송국 측이야 예고된 일정이라 녹화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출연자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많은 설왕설래가 있은 다음에야 녹화 강행이 결정된 것으로 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마음도 젖는다. 바이러스도 싹 씻겨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램을 되뇌며 길을 나선다. 차량 이동은 여전하나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조차 외면이다. 음습하고 암울하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감염,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이다. 누가 감염되고 싶어서 감염되는가? 이렇게 녹화장에 나가는 것도 논리에 반하는 일 아닌가? 스스로 차단하는 방법이 최선 아닌가? 다른 사람이라도 자유롭게, 미심쩍은 사람 스스로 차단에 힘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위험에 노출, 그마저 알 수 없는 실정이 되어버린 어려운 상황이다.
집단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 질병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파 경로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접촉으로 감염되는 것이니, 의학 지식이 전무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질병관리본부조차 초기부터 "근원을 봉쇄해야 한다." 했다. 정부의 깊은 속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차단하지 않았다. 전문가 집단인 대한의사협회의 24일 성명에 의하면 "골든타임을 놓쳤지만 이제라도 중국발 입국자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즉시 시행해야 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한 달 전인 지난 1월 26일부터 감염원의 차단을 위해 중국발 입국자들의 입국 금지 조치가 필요함을 무려 6차례나 강력히 권고했습니다."라 하고 있다. 상호주의 운운하며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단세포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서야 되겠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가 차단하지 않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무방비상태의 한국에 대한 출입국 통제를 다른 국가들이 하고 나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조롱하기까지 한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14일간 격리할 것을 제안한다"거나, "한국의 전염병이 역유입되는 것을 엄격하게 막아야 한다.", "한국과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국의 항공 왕래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자부심이 큰 민족이라 중국의 이러한 조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하지를 않나, "한국은 사태가 가장 심각한 나라"라며 "우한 코로나 확산을 막고 싶으면 더욱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훈수까지 한다. 중국 환구시보 총편집인 후시진(胡錫進)의 말이었다. 이제 중국에서까지 한국발 여행객에 대한 격리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대처하기가 진퇴양난인듯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 다 아는 중국 전국시대 이야기 하나 들춰보자. 양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다. 우리가 무너져 양 한 마리가 도망쳤다. 어쩌다 있는 일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다음 날 한 마리가 또 사라졌다. 안 되겠다 싶어 우리를 고쳤다. 남은 양을 보전할 수 있었다. 망양보뢰(亡羊補牢)라 한다.
우리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亡牛補牢)"는 헛수고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실패한 뒤에 뉘우쳐봐야 소용없는 일, 고친다고 소가 돌아오랴, 소득이 있으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더러는 첨언과 함께 큰 것을 잃기 전에 준비를 잘하라는 교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망양보뢰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 보완해서 더 이상의 실패를 막으라는 뜻이다. 출전에 의하면 "양을 잃은 후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亡羊而補牢, 未爲遲也.)"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과 다르다.
바이러스 문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국가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책임 소재나 정치적 유불리가 문제 될 수 없다. 말장난이나 하고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일이 아니다. 내용물 없이 포장만 호화롭게 하거나 호도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진정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한마음으로 난국을 타개해야 할 시점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