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미니멀과 맥시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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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니멀과 맥시멀 사이

  • 승인 2020-02-19 16:06
  • 신문게재 2020-02-20 22면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이은지 증명
"중수가 되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자마자 팝업창이 떴다. 눈팅만 하던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등업이다. 한달 전 쯤, 미니멀 라이프 카페를 내 손으로 검색해 가입했다. 복잡한 머릿 속을 정리하고 싶었을까.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미니멀 라이프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고르고 살 수 있는 현대인의 생활에 역행한다. 사물의 본질만 남기는 것을 중심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근간이다.

당신도 언제, 무엇을 위해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물건 속에 파묻혀 소중한 공간을 낭비하고 있진 않은가? 효용되지 못하고 창고 가득 쌓여있는 물건을 외면한 채 집이 좁다며 불평한 적은 없는가?

훌쩍 커버린 아이의 장난감을 물려주고, 테트리스 하듯 끼워넣은 가구를 팔고, 안 쓰는 그릇을 처분하며 얻는 것은 '미니멀' 그 이상이다. 단순히 주변 물건의 정리뿐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는 것.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랄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이웃과 나누고 '말밥 마켓'에 중고물품을 파는 과정 속에서 삶이 단정해지는(듯한) 신기한 경험을 한다. 집안 곳곳 숨어있던 공간이 드러나자 살림의 배치 동선이 한눈에 그려져 물건을 찾는 시간도 절약된다. 청소 또한 편해진다.

살림을 늘리지 않으려는 피나는 노력은 구매욕을 억누르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 중 갖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몇날 며칠을 견딘다. 실상 당장 필요해 결제를 누르지 않을 수 없는 물건을 몇 안된다. 그것은 꼭 필요하다기 보단 내 욕심에, 넘치게 갖고 싶었던 물건이라는 의미다. 그 이후론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묵힌다. 장바구니에 넣는 행위만으로도 마치 소유한 것 같은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계속 떠오르면 사고, 잊혀지면 안 산다. 나만의 소비 원칙이다.

채워지지 않는 물욕을 버리고 내가 가진 물건에 만족하는 생활 속에서 물건은 '소유'가 아닌 '의미'의 가치를 품었다. 소유한다고 어디 물욕이 채워지던가? 그것은 미니멀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발견한 소중한 가치였다. 먹다 버린 페트병이 화분으로, 우유팩이 정리함으로, 본연의 역할을 잃은 물건에 다른 쓰임을 부여하는 것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다.

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는 여러 의미에서 빛을 발한다. 미니멀과 맥시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내겐 더욱 그렇다. 삶을 간소화 하고 싶은가? 일단 지금 내가 있는 공간부터 비워보자. 넓어진 공간에 여백을 채워 넣자. 내 삶에 집중하자. 미니멀은 멀지 않은 곳, 당신 가까이 있다.

이은지 편집2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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