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선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
차명계좌(借名計座)란 금융계좌 명의자와 계좌에 있는 돈의 실소유자가 서로 다른 경우를 말한다. 사업자가 본인 명의 계좌가 아닌 가족, 종업원, 법인 대표자 개인계좌 등 타인 명의 계좌로 거래대금 등을 입금받는 것은 차명계좌 사용에 해당한다. 차명계좌는 주로 보이스피싱, 마약 거래와 같은 범죄와 관련한 수익, 기업의 비자금, 세금신고를 하지 않은 소득 등 출처를 밝히기 곤란한 불법적인 돈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예금주의 실명이 아닌 익명, 가명계좌로도 금융거래를 할 수 있었다. 비실명거래는 막대한 ‘검은돈’의 원인이었다. 1993년 8월 12일 정부는 금융거래 정상화를 목적으로 대통령령인 '금융 실명 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하고 실명으로만 금융 거래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실명이 아닌 거래'만을 금지해 실소유자와 계좌명의자의 합의에 따라 차명계좌를 이용한 세금 탈루 등을 적발해도 탈루 세금과 가산세를 추징당할 뿐 별도의 형사 처벌은 없었다. 결국 금융실명제 시행 후에도 친구와 친척은 물론 사돈의 팔촌 이름까지 동원해 만든 차명계좌는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2014년 11월 29일부터는 합의에 따른 차명 거래까지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약칭:금융실명법)을 시행하고 있다. 범죄수익 등 불법재산의 은닉, 비자금 조성,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등을 위한 모든 차명 거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실소유자와 명의자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계좌의 실소유자와 명의자, 해당 금융기관 종사자 등이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등을 통해 탈세와 비자금 조성의 주요수단으로 악용되는 차명계좌 등에 강력하게 대응했지만, 짬짜미에 의한 거래를 추적해 차명계좌를 찾아내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2013년부터 국세청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세를 차단하고 차명계좌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이 참여하는 탈세 감시체계인 '차명계좌 신고포상금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13년 차명계좌 신고를 통해 탈루한 세금 1,159억 원을, 2018년에는 5,367억원을 추징했다.
차명계좌에 수입금액을 숨기고 세무신고를 누락한 경우 탈루한 세금과 함께 고율의 가산세를 부과하며, 과태료나 형사 처벌 등 별도의 재산상·신분상 불이익이 더해질 수 있다. 차명계좌 신고포상금 제도가 운영된 이래 많은 사업자가 탈루한 세금을 추징당하고 처벌됐지만, 아직도 ‘나는 괜찮겠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업자들이 있다.
이제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세는 더는 숨을 곳이 없다. 탈세 제보, 차명계좌 신고 등 국민 참여 탈세 감시체계가 활성화됐고, 국세청은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유관기관과 협력을 통해 탈세 혐의를 분석하고, 차명계좌를 사용하는 탈세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정하게 과세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2014년 금융실명법 개정 이후는 불법 목적의 차명 거래는 명의를 빌린 사람은 물론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차명계좌는 고의, 부주의 여부를 떠나 사용하는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며 범죄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버핏은 세금을 내는 건 성공한 투자에 대한 논리적인 결과라고 했다. 정부에 신고 납부할 세금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소득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내는 세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경비다. 이 땅에 사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4대 의무(국방, 근로, 교육, 납세) 중 하나인 세금을 성실하게 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절세방법은 '성실납세'다.
김학선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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