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침략자들과 벌인 전쟁 때문이 아니라 천연두, 홍역 등의 전염병이 사인(死因)이었다.
다른 대륙과 단절됐던 탓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성 질병에 대한 내성(耐性)이 전혀 없었다. 중남미 원주민 사회는 아즈텍과 잉카라는 찬란한 문명을 수립할 정도로 발달했지만, 유럽인들과 접촉하는 순간 새로운 질병에 노출되어 이유도 모르면서 죽음을 맞았다.
10여 년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나온 '우주 전쟁'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구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권에서 온 외계인이 파죽지세로 지구를 점령해 나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재래식 포탄을 맞고 맥없이 쓰러진다.
지구에는 인간과 수백만 년을 함께해온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미생물이 존재했고 처음 접하는 지구 미생물에 감염된 외계인들은 잉카 백성들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질환 때문에 온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첫 발생지 지명을 따서 '우한(武漢) 폐렴'으로 불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긴 명칭을 거쳐 세 번째 이름 코로나19로 불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로 향하는 모든 도로가 차단되고 시민들에게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수천 명이 탄 여객선에서 감염자가 나오자 꿈같은 크루즈 여행을 기대했던 관광객들은 일본 근해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기약도 없는 악몽의 시간이 보내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동양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질병이 이성적 사고를 위협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중국은 신성불가침이라던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까지 흔들리는 위기상황이 됐고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도 대회에 영향을 줄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가 의학적 이슈에서 급기야는 정치, 외교적 논란거리로 비약한 것이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았던 흑사병은 1347년에 시칠리 항구에서 시작됐는데 유럽 전역으로 번지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교역이 활발한 오늘날의 전염성 질환은 발생과 거의 동시에 국경을 넘어간다. 작년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2주 만에 이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주까지 퍼졌다.
21세기 들어 우리를 긴장시켰던 전염성 질환만 해도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 등이 있다. 국가적인 방역 노력과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결국에는 질병이 종식됐지만 한번 전염성 질환이 번질 때마다 사회에 끼친 부정적 여파는 상당히 크다.
사람 모이는 곳을 피하다 보니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시장, 마트는 물론 식당, 영화관, 공원 등을 거쳐 관광업, 운송산업 등 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는다.
대전도시공사가 운영하는 오월드만 해도 날씨가 포근했던 1월에는 지난해보다 관람객이 증가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이후에는 다시 감소세로 전환했다. 대전은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인데 확진자가 거주하는 주변 지역은 더 심각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철저한 방역과 개인위생의 준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사스나 메르스 사태에서 보았듯이 질병이 종식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일상과 사회의 시스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지나친 경계심과 공포감으로 인한 소비위축과 사회 분위기의 침체가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보건, 경제, 문화, 행정 등 여러방면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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