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다보면 가족이나 배우자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쑥스러워서 정작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말은 해야 맛이다. 가족 간에도 서로 표현을 해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며느리가 받아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싶어 한 통의 편지를 소개한다.
이정수(71·용운동) 씨는 10여 년 전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을 며느리로 맞이했다. 결혼생활 11년째를 맞이하는 아들 내외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11년 전 아들이 베트남 신부를 맞아 결혼을 했을 때만 해도 참으로 답답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식성도 다르고 문화도 많이 달라서 힘들었던 날이 많았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이정수 씨는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정수 씨는 11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며느리에게 마음을 전했다.
'먼 나라 베트남에서 시집 와 우리 가족이 된지 11년째가 되어 가는구나!'
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편지에는 손자를 낳았을 때의 기쁨과 멋진 손자를 낳아준 며느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며느리 팜티국 씨는 4번의 도전 끝에 국적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때의 기쁨과 국적을 취득한 후 팜티국이란 이름을 '박은지'라는 한국 이름으로 개명해 주민등록에 올라갔을 때의 감회를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동안 며느리와 말이 잘 안 통해서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하고 많이 속상했는데 국적도 취득하고 이제는 한국말도 잘해서 직장에도 다니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며 행복한 마음을 전해 편지를 읽으며 코끝이 찡했다. 예전에 며느리가 "엄마는 언제 제일 기뻐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정수 씨는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니가 밝게 웃을 때가 제일 기쁘고 즐겁다'고 말하니 니가 밝게 웃어주었다."고 회상했다.
이정수 씨는 28년 동안 택시운전을 해오다 작년에 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며느리 박은지 씨가 직장에 다니며 번 돈으로 용돈도 주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정수 씨는
"세상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으니 서로 다독이고 이해하면서 잘 살아보자. 부자가 못되서 풍족하게 도와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 잘생긴 우리 손자 '황지우'무럭무럭 멋지게 자라도록 우리 힘쓰자. 은지야,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한다."라는 말로 편지글을 맺었다. 편지에는 며느리를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이정수 씨와 며느리 박은지 씨는 친정엄마와 딸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모든 다문화가정이 이정수 씨 고부처럼 서로 살갑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해본다.
명예기자 박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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