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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봉준호의 '기생충'은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은 샴페인 잔을 들며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영화 속 부자를 숙주삼아 기생하려고 고군분투했던 기생충들은 망했다. 세계는 불평등이 화두다. 세계화의 그늘이다. 서구 선진국의 세계화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은 결국 자충수를 뒀다. 제 3세계는 물론이고 자신들도 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이라는 악마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시인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시커먼 산야에도 봄이 오면 여린 새싹이 올라온다. 정말 이랬으면 좋겠다. 봉준호의 승리처럼, 부평초 잎처럼 상한 영혼들이 한 떨기 꽃을 피우는 민초의 억센 삶의 의지는 위대하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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