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컴퓨터로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일이 많았다. 컴퓨터의 수많은 기능 모두가 놀랍지만, 특히 반복 작업에 탁월하다.
논문 한편 쓰려면 수많은 퇴고가 필요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인들 어찌 단번에 원고를 완성할 수 있으랴? 논리가 한 번에 다듬어질리 업고, 누락되는 내용이나 오탈자가 없을 수도 없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박사학위 경우 공식 심사만도 6번이나 했다. 매번 원고를 다시 써야 한다. 지난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학술적 깊이가 더해졌을 것이고, 문장력과 필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했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문학작품은 물론, 각종 문서 작성에 수많은 퇴고가 따른다. 하룻밤이면, 글 쓰는 이 휴지통에 구겨진 원고지가 가득해 진다. 덕택에 잘 써지는 필기도구도 귀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문서를 컴퓨터로 작성하면 고쳐 쓰기가 무척 편리하다. 적어도 같은 문서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보관, 스크랩, 분류, 정리 작업도 대단히 수월하다. 다시 검색하고 활용하기도 용이하다.
세세히 기억할 필요도 없다. 키워드만 기억하면 그만이다. 기억력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머리도 컴퓨터 기억력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머리를 빌리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기술발전에 따른 저장매체 변화로 여러 번 자료가 못 쓰게 된 일이 있다. 사용 미숙에 의한 기록 매체의 물리적 손상으로 자료를 못 쓰게 된 경우도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자료 손상도 빈번하게 경험하게 된다. 요즈음엔 해킹에 의한 자료 유출이나 손상이 있기도 하다. 글로 쓰니 그렇지 자료를 잃어버린 사람은 그 황당함을 안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자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수시로 백업 받아 놓아야 하겠으나 그것도 말같이 쉽지 않다. 자료가 많아지면 수시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원래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보호나 복제 방지를 위해 만든 것이다.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을 불특정 다수가 불법적으로 쉽게 이용하는 것은 분명한 저작권 침해이다. 그렇다고 치명적 파괴력을 갖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자료는 모두 보조기억장치에 저장된다. 컴퓨터를 켜면 운영체제(OS)가 주기억장치(RAM)에 로드 된다. 전기라는 에너지와 프로그램을 통하여 컴퓨터가 비로소 깡통을 벗어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OS를 따라 자동으로 RAM에 상주하여 작동하는 것과 특정 프로그램을 작동(click)시키면 실행되는 것, 횟수나 날짜에 따라 작동되는 것 등으로 대별 된다. 열거하기에 그 종류가 너무 많다.
해킹(hacking)은 통신망을 통하여 다른 컴퓨터에 무단 침입, 프로그램이나 자료를 불법 이용하거나 바꾸는 것이다. 없애기도 한다. 컴퓨터 자체를 오작동 시켜 사용 불가능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종종 아날로그를 추억한다.
사람 마음도 감염시킨다. 백주 대낮에 사기 당하 듯, 알면서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방어벽, 백신, 보안 및 치료 프로그램 등 각종 S/W를 만들기도 하지만, 모두 막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요, 항상 피해 가는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덕성이다. 프로그래머는 유익한 프로그램만 만들어야 되겠으며, 사용자는 무단 복제나 불법사용을 하지 말아야 된다. 전문가 또한 공익적인 일만 해야 한다.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이행되는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로그(digilog = digital +analog)시대인 것이다.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기술시대라고도 한다.
밖에 나가면 온 동네사람이 마스크를 하고 있다.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빈번하다. 적어도 필자와 관련된 행사나 모임은 모두 취소되었다. 공공장소 출입도 삼가는 모양이다. 상가, 거리에도 사람 발길이 뜸하다. 온통 바이러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에 이어 올해 우한폐렴까지 빈번하게 일고 있는 전염성 질환이 환경파괴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과학문명을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 생활에도 도덕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생시에 "머리는 남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인재를 등용하고 활용하라는 의미 일 것이다. 한편, 우민화 정책의 첫 번째가 머리를 없애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머리다. 머리가 비어있으면 남이 먼저 점령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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