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는 사회과학, 언어학을 가르치면서 일생을 보낸 기호학자로서, 사진에 대한 심오한 글을 남겼다. 그는 사진작가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찰자의 관점에서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렸을 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후 어머니와 할머니는 롤랑 바르트의 성장 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그의 중·후반기 글에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은 사진의 특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사진 '자체'가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본질적인 특징을 통해 다른 이미지들과 구분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책의 후반부를 어떤 관점에서 쓸 것인지 암시한다. 바르트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몇 개의 사진들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사진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정의하고자 했다.
사진은 작가가 보고 느낀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하면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사진은 스투디움과 푼쿠툼이라는 이원성을 지닌다. 스투디움은 인간의 관심을 나타내는 라틴어로서 어떤 것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열정, 일반적인 정신 집중 등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푼쿠툼은 뷰파인터를 통해 보이는 모든 것으로서 찔린 자국, 작은 구멍, 조그만 얼룩, 작게 베인 상처, 시간 등의 의미하는 말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푼쿠툼이 사진의 정의와 본질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한 예로 전쟁 중 살벌한 병사들이 있는 거리에 서 있는 수녀, 빈민가를 배경으로 익살스러운 어린 아이의 웃는 표정과 썩은 치아, 맹인 연주자를 안내하는 아이가 걷고 있는 익숙하고 정감 있는 풍경들은 사진작가에게 특별한 푼쿠툼이 된다.
바르트는 시간, 색채, 정지 등 사진의 본질적 특징으로 인해 의미가 왜곡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사진의 기술적 특성 때문에 암실/어두운 방이라는 개념과 연결하는 건 잘못이며, 사진은 인간의 심리에서 일어나는 대상의 존재에 대한 명증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암실이 아닌 '밝은 방'이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진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해 사진을 완벽한 환상들의 문명화된 코드에 종속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화해 사회 또는 현실의 특수성, 터무니없음, 광기 등을 드러나게 할 것인가의 두 가지 해석 가능성을 제시해놓고, 선택은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진 전시회에 갈 때마다 큐레이터나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수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지 나 자신의 푼쿠툼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사진을 감상하곤 했었는데, 롤랑 바르트의 철학적 심미안 덕분에 새로운 사진 감상법을 익힐 수 있었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사진을 의미 있게 감상하는 혜안을 얻기 바란다. /박주한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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