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추억의 보문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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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추억의 보문산을 오르며

  • 승인 2020-02-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관광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내세우는 대전 팔경 중 하나인 보문산은 시의 중심부 남쪽인 중구지역에 있는 곳으로 필자의 집에서 차를 타고 가면 1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자주 찾아가는데, 457m 높이의 나지막한 산으로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갈 수 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1965년에 공원으로 지정된 보문산은 대사동 외 11개 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버스노선도 많고 주차장도 여러 곳이 있으며, 등산코스도 10곳 정도로 다양하고 산행하다가 목을 축일 수 있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 약수터도 14곳 정도 되며 특히 주변엔 절들이 많이 있다. 이곳의 보문산은 보물이 묻혀있어 처음에는 보물산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보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등산코스를 소개하면 청년광장에 차를 주차하고 과례정-시루봉-보문산성-야외음악당-망향탑-청년광장으로 이어지는 약 8km 정도 되는 코스가 있으며 둘레길로는 행복 숲길이 있다. 한 바퀴 도는데 15km 정도 되지만 잘 닦여진 포장도로만 왕복으로 해도 운동 효과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청년광장에서 우측으로 오월드까지는 2.4km가 걸리고 좌측으로는 성씨별 시조를 살펴볼 수 있는 중구의 자랑 뿌리공원이 나온다. 보문산성으로 올라가면 가오동·대전역·유성 수통골·관저동·대덕구 방향 등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그곳에서 예쁜 사진도 찍고 깨끗한 공기도 마시며 휴식도 취할 수 있다.



1989년에 대전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보문산성은 둘레가 300m로 1992년에 백제 산성중 최초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동쪽 등산로 길가에는 너비 6m 높이 3.2m 되는 자연 상태의 마애여래좌상(대전 유형문화재 19호)이 새겨져 있고 고려 시대 절터인 보문사지(대전기념물 4호)에는 대전문화재자료 10호인 보문사지 석조가 있다.

필자는 남편과 9살 된 손자 때문에 보문산 둘레길을 자주 걷는 편으로 청년광장에서 우측으로 출발하여 차도가 막힌 곳까지 걸어갔다 되돌아오곤 한다. 여름철이면 길가에 뱀딸기가 빨갛게 여기저기에 익어있는 것을 보며 손자와 같이 잘 익은 것을 따서 먹으면서 서로 웃으면서 이것은 맛 있네 저것은 맛이 없네 하면 서로 입에 넣어 주곤 했다.

할아버지가 안 먹는다고 하면 손자 녀석은 그중에서 가장 빨간 것으로 골라주며 "맛있다"며 억지로 입 안에 넣어 주는데, 할 수 없이 "맛 있네" 하면서 웃고 만다.

가을이면 걷고 있는 길가에 도토리와 밤송이가 여기저기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걸 줍기 좋아하는 손자 때문에 걷는 길은 거북이 마냥 느리게 느리게 이어지지만 가는 길을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누가 많이 줍나 내기도 한다. 과연 누가 이길까? 당연히 오랜 삶을 살아온 할머니가 이기겠지. 손자는 제 나름대로 많이 주웠다고 자기가 이겼다고 자랑하다가 내가 주운 양을 보고 와! 하며 놀란다.

둘레길 걷기를 마치며 내려오는 길의 막바지 전에 이르렀을 때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 겨울 양식 준비하는 다람쥐를 생각하며 산속에다 주워왔던 도토리를 전부 던져 놓는다. 손자도 할머니가 산속에다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다람쥐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좋아 한다.

요즘에는 도토리를 모두 주워가버려 겨울에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던져 놓은 거라도 먹고 굶어 죽으면 안 될 텐데 라고 걱정되기도 한다.

청년광장에서 우측 끝까지 가면 차도 방지막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는 아담한 '쉼터 공간'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손자는 컵라면을, 남편은 커피를, 나는 커피와 호떡을 시키곤 한다. 걷고 난 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는 고소한 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행복은 큰 것에 있지 않고 작은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게 우리네 소소한 행복이 아닐는지...

'쉼터 공간'은 일반건물이 아니라 조그마한 조립식 건물이라 장소가 비좁게 보였지만 주방 안에서 일하는 젊은 부부가 참 친절하기도 하다. 한번은 손자가 순한 맛이 없어 매운맛을 먹었는데 맵다고 하니 시원한 생수 가득 한 컵을 웃으면서 내민다. 다시 한 컵을 요청해도 싫은 내색 없이 웃으면서 또 한 컵을 내어 준다. 컵라면을 먹다 흘려 화장지를 얻으러 가도 생긋 웃는 얼굴이다. 하나의 행동도 친절함이 묻어 나오면 받는 사람은 참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친절의 인향이 풍기는 이곳 '쉼터공간'.

이러한 친절이 있기에 보문산은 더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곳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보문산 바로 앞의 청년주차장을 이용하므로 우측 행복 숲길로 향하면 맨 처음 보이는 팻말이 고촉사를 알려주고 있다. 고촉사란 절에 가보면 돗대 바위와 미륵상을 닮은 천연 미륵불이 있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전국에서 사람들이 기도하러 많이 오고 내 고향 전설에 나오는 돗대 바위는 아이를 못 낳은 사람이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기도하면 들어 주고 결혼 못 하는 사람은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결혼하게 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희귀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고란초도 바위틈에서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보문산은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이 꽃길을 이루어 아름답기 그지없고 길가의 이름 모를 꽃들 또한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이 해주고 있다. 여름이면 울창한 녹음과 잘 다듬어진 둘레길 그늘을 만들어주어 시원한 바람 맞으며 유쾌하게 걸을 수 있고 중간중간 놓여진 기다란 의자에 잠시 쉬면서 땀도 식힐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가을이면 단풍이 멋지게 물들어가는 길을 재미있게 해주고 탁 트인 하늘도 바라보고 갈참나무 낙엽들이 쫙 깔린 길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면 신발 소리가 음악처럼 울려 퍼진다.

이러한 낭만이 보문산엔 여기저기 쌓여 있다.

겨울 또한 야트막한 산이라 그리 춥지 않고 사시사철 끊이지 않은 인파에 보문산은 외롭지 않고 넉넉한 인심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 서식지로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보게 되는 다람쥐를 어린 손자가 가장 좋아한다. 그러면 또 느리게 느리게 둘레길 걷다 쉬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시 한 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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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였던가~

도토리 세 알

나무 밑에 숨겨놓은 게

여기였던가



예쁜 낙엽 다섯 잎

놓아둔 곳이

여기였던가



밤알 한 톨

저기쯤 놓아둔 것 같은데

저기였던가



바람이 가져갔나

산신령이 가져갔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네

생각을 더듬으며

터덜터덜 걸어온다



나무 밑에 숨겨 놓은 게

여기였던가



쉬면서

땀도 식힐 수 있다



나영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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