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배려가 우리 모두의 주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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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배려가 우리 모두의 주식이 되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1-3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고향의 선산을 지키러 간 아내의 그림자가 눈에 밟혀 승용차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잡았다. 고향을 향해서 가는 승용차는 정산을 지나 칠갑산 꼬부랑길 편도 1차선 급커브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급커브로 꺾여 내려가는 길이어서 조심하느라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뒤 따라오던 그랜저 승용차 한 대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빵빵빵'귀를 자극하는 클랙슨 소리를 내질렀다. 깜짝 놀라 운전대가 휘청했다. 사고가 날 뻔하였다. 천만 다행이었다.

배려 없는 그랜저의 클랙슨 소리에 튀어나올 듯한 욕설을 참느라 인내심을 다독이느라 혼이 났다.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는 몰라도 배려심은 어디로 출장을 갔는지 10원 어치의 배려심도 없는 사람 같았다.

배려심 없는 그랜저 운전자는 차만 좋았을 뿐이지 인품이나 심성은 고물상이나 대장간에 갖다 줘도 괜찮을 사람 같아 보였다. 바로 그 사람은 차만 좋은, 비단보에 개똥을 싼 위인임에 틀림없었다.

불현 듯 시골길에서 보았던 티코 운전자가 떠올랐다. 시골길 장날 무거운 마늘 보따리째 사들고 끙끙대던 시골 노파를 친절히도 태워다 드렸던 티코운전자가 떠올랐다. 꽃보다 아름다운 티코운전자의 뭉클했던 배려심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그 차가 비록 알량한 티코였지만 인품과 인성은 그랜저로 살고 있는 티코 운전자였다. 내 뒤를 따라오던 그랜저 운전자는 평생 티코 운전자의 종노릇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은 성인 반 고교 검정고시 지도를 하기 위해 임박한 시간에 쫓겨 엘리베이터에 채찍을 가하다시피 내려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한 50m쯤 가다가 집에 놓고 온 핸드폰 생각이 났다, 두고 온 핸드폰을 가져오기 위해 부랴부랴 발걸음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재촉했다. 마침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한 중년 부인이 타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시간이 급하여' 잠깐만요 '소리를 질렀으나 여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버튼을 눌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2초 아니, 3초만 기다려 주는 배려만 있으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여인이었다.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2, 3초 정도 기다려 주는 아량과 배려심이 없는 그 여인의 뒷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워 보일 수 없었다. 한 순간 천사 노릇만 해 주면 되는 것을 그 여인은 그걸 못하는 도도한 분이었다. 너무나 고귀한 인품이라 접근하기가 어려운 위인이었다. 얼룩진 마음은 어두운 그림자에 저려오는 아림까지 더해주는 눈 위에 서리까지 더해주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일 전에 읽었던 일화 속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꽃보다 아름다운 목사님의 배려심이 나를 그의 완전한 포로로 만들은 것 같았다.

어느 교회 가족찬송 경연대회에서 집사 한 분이 가족과 함께 잘 아는 찬송을 부르다가 가사를 틀리게 불렀다.

그 광경에 교인들은 깔깔대고 웃었고, 그 바람에 집사는 얼굴빛이 홍당무가 되다시피 자리에 돌아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로 이어 담임목사 가족이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목사님도 어느 부분에 가서 가사를 틀리게 불렀다. 교인들은 또 다시 깔깔대고 웃었고, 목사 사모님과 자녀들은 "왜 틀리느냐?"고 핀잔주는 얼굴로 목사님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느 날, 그 목사님이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장로님들이 목사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처럼 메모해 놓은 한 장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7월 14일, 교회 가족찬송 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가 찬송을 부르다 틀려서 교인들이 다 웃었는데, 김 집사가 너무 무안해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 다음 차례로 우리 가족이 찬송 부를 때 나도 일부러 틀려 주었다. 다시 교인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 슬쩍 김 집사를 보니 '목사도 찬송을 틀리게 부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작은 일로 한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목사님의, 꽃보다 아름다운 배려심에 가슴이 뭉클했다.

작은 배려의 마음이었지만 사람의 심금을 움켜잡는 데는 그렇게 클 수가 없었다.

평신도가 찬송을 부르다 틀려서 무안해 하고 있을 때 그를 위해서 일부러 틀려주는 목사님의 배려하는 태도, 이는 아무리 봐도 훈장 감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뭉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배려심!

배려라는 단어가 어느 특정인의 개인 소유물이 되지 말고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소중한 배려라는 단어가 천연 기념물로 남지 말고 우리 모두의 쌀로 먹는 주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배려가 우리 모두의 주식(主食)이 되게 하소서

이 배려라는 단어가 생각 없이 빵빵거리던 그랜저 운전자에게도, 엘리베이터 혼자만 타고 올라가던 도도한 여인에게도 모두의 주식(主食)이 되게 하소서

티코 운전자와 목사님의, 꽃보다 아름다운 배려심이 무차별 전염 바이러스로 창궐하여 우리 모두가 향내음 풍기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남상선 / 수필가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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