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엄마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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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엄마표 음식

전유진 편집부 기자

  • 승인 2020-01-30 11:30
  • 신문게재 2020-01-31 22면
  • 전유진 기자전유진 기자
전뉴진
전유진 편집부 기자
오랜만에 본가에서 지내는 날은 배 터지는 날이다. 올 설 명절도 어김없이 그랬다. 엄마가 일일이 고르고 다듬고 지지고 볶아서 만든 반찬과 국은 서울, 대전 아니 전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난 음식들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다보면 세상 모든 일들을 숫자와 효율로만 재고 따지던 판단력이 잠시 흐릿해진다. 사실 엄마가 바쁜 와중에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장을 보고 부엌에 서서 만들어내는 고생을 생각하면 배달 서비스로 치킨을 사 먹는 게 낫다. 시간도 줄이고 맛도 전국 어느 지점이든 같아서 실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표 음식을 높게 사는 이유는 '로열티'가 있어서다.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은 물론, 목숨까지도 돈으로 계산하는 사회에 익숙해지고 있다. 학교에선 과정이 어쨌든 성적으로 학창 시절이 매겨졌고, 회사에 입사하니 노동을 바쳐 월급으로 맞바꿨다. 어느새 내 시간과 열정과 노력이 숫자로 환산되는 일에 민감해지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보험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야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부러진 발목뼈는 단순히 지방신문 기자라는 직업과 연봉 기준으로 값이 측정됐는데 그제야 내 다리 한 짝이 얼마나 저렴한지 알게 된 탓이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차도 없는 날 어디든 데리고 다니던 튼튼한 다리가 망가졌는데, 힘들게 이룬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는데, 20대 청춘에 치마가 입기 싫을 정도로 기나긴 흉터가 남았는데, 헐값으로 넘어갔다.



내 다리야 잘 붙었지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딱한 사정도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산재 사고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하면 위험을 외주화한 대가로 원청업체가 낼 돈은 최대 15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작 1500만 원이면 '경영상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 누군가를 보호장비 하나 없이 사지로 내몰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형벌과 손해배상이 남는 장사다. 가난한 아들과 아버지들은 끼이고 잘리고 으깨어져 애석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내 가치가 단순히 몇 푼으로 환산되는 게 못마땅하면서도 비슷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자랐는데 언제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 되어 버렸나. 내 일상만큼은 이러한 계산법으로부터 지켜내고 싶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깃덩어리 마냥 등급과 가격으로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친구와 맥주 한 잔과 치킨 한 조각의 수다는 돈으로만 보면 얼마 되지 않지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신나고 따뜻한 무언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어떤 것들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전유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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