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70㎞ 혹은 60㎞로 운영하는 도시 내 도로의 제한속도는 앞으로 50㎞로 낮아진다. 주거지역은 30㎞로 제한한다. 민식이법과는 별개로 도로교통법시행규칙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대전도 예외일 수 없다. 바야흐로, 자동차에 대한 제한속도 규제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운전자들의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어떤 이는 '운전자들의 인식변화'를 요구하지만, 인식 변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하고 스스로 느끼는 과정을 선행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속도 하향 규제에 대한 합리성은 공공의 이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공공의 득이 실보다 많다는 얘기다. 추려보면 다섯 가지 정도 된다.
우선,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교통사고는 속도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속도에 따라 치사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속 64㎞에서 보행자 충격 시 치사율은 평균 50%. 48㎞가 되면 7%로 떨어지고, 32㎞가 되면 1%로 낮아진다. 속도만 낮춰도 사실상 사망사고는 예방할 수 있는 것이 된다.
2018년 우리나라 교통사고사망자는 3781명, 하루 10명꼴이다. 대전시도 4일에 1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교통사고 비용만도 한 해 40조 원에 이른다. 모든 종류의 재해와 사고를 포함해 그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을까? 속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비용효율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요즘 들어 중요성이 더욱 커진 깨끗한 공기. 즉, 대기오염의 저감 효과다. 자동차는 시속 60~70㎞일 때, 연료 효율이 높고 배기가스 배출도 적다.
다만, 일정한 속도로만 달릴 수 있을 때 얘기다. 도시부에서 이런 속도로 달릴 수 없다. 교차로나 커브, 교통혼잡 등으로 필연적으로 제동과 가·감속을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비 배기가스가 자동차 미세먼지의 9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기차나 경유차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인 것이다. 속도를 낮출수록 제동과 가·감속에 따른 부하가 적어 미세먼지를 적게 배출하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 속도를 낮추는 핵심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세 번째는 소음감소 효과다. 자동차 소음은 스트레스를 주어 불면증은 물론 심장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시속 50㎞에서 30㎞로 줄이면 소음은 약 4dB을 줄일 수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간접적인 효과인데, 도시활동의 증가로 얻는 건강편익과 도시의 개방성 증가다. 도시가 안전해지고 공기가 깨끗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전거나 보행 활동량이 늘어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면 얻는 건강편익이 부(-) 편익보다 65배가 더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속도가 높고 교통량이 많은 도로는 도시를 가르는 장벽이 되지만, 속도가 낮아지면 접근성이 개선된다. 도시의 개방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으로 속도 하향규제는 강화되는 방향으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늦은 편에 속한다. OECD 국가에서 도시 내 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60㎞로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칠레가 유일하니 말이다. 유럽은 속도규제에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작년에 'Vision Zero'를 선포하고, 2041년까지 교통사고사망자를 '0명'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런던 중심부 전체를 20mph(약 32㎞/h) 존으로 운영하는 것이 계획의 요체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대전시나 정부가 할 일은 속도규제의 이유를 시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교통사고사망자 Zero' 우리도 할 수 있다.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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