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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팔루디 지음│손희정 옮김│arte
"정체성은," 아버지가 고심하며 대답했다. "정체성은 사회가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인정한 대로 행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긴단다.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야." -본문 중에서
어린 시절 저자의 기억 속 아버지는 마초적이고 폭력적이던, 전형적인 가부장이었다. 그 아버지가 이혼 후 가정을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이메일을 보내 '특별한 변화'를 알린다. 태국에서 성별 정정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첨부된 76세 아버지의 사진은 빨간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스테파니'라는 새 이름이 사진에 적혀있었다. 저자는 이 극적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모국인 헝가리로 돌아간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역사와 개인사의 격랑 속에 늘 자신을 가장해야 했던 아버지의 여러 이름과 정체성 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 페미니즘 저술가로 살아온 저자 수전 팔루디에게 트랜스젠더 아버지는 "반드시 써야만 하는" 주제였다. 많은 페미니스트 각성 서사와 마찬가지로 여성, 제2물결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정체성은 성차별적인 편견에 젖은 사회와 가부장 아버지의 폭압이 짓이긴 그곳에서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저자에게 정체성, 즉 "내가 누구다라는 감각"은 위협의 반작용으로 강해진 무엇들이었다. 때문에 그 위협의 주체였던 그가 이전에는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했지만, 언제나 자신은 여자였고 이제는 성별 정정 수술을 받아 '진짜 여자'가 되었다는 선언은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아버지의 역사를 더듬어 아버지와 직면하는 일은 저자 자신의 여성 됨, 페미니스트 됨에 대한 직면이었다.
유대인 이슈트반 프리드먼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헝가리의 민족 동화 정책에 경도돼 열여덟에 '가장 헝가리 민족다운' 이름, 팔루디로 직접 성을 바꿨다. 유럽 어느 곳보다 적극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헝가리에서, 이슈트반 팔루디는 학살의 희생자가 되기보다 나치 완장을 차고 '비유대인'을 연기하며 살아남기를 선택했다. 유대인 탄압을 피해 도미해서는 사진 조작 전문가 스티븐으로 살며 '정상가족'의 가장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혼이란 실패와 함께 스티븐은 생애 마지막 시기를 '모국' 헝가리에서 정숙한 노부인 스테파니로 보낸다.
언제나 불가해한 존재였던, 자기만의 암실 속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만난 딸은 굳게 닫혀 있던 아버지라는 문을 끈질기게 두드린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정체성의 경계들을 톺아 가며 오직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추적한 결과물은 그저 한 사람의 서사로 그치지 않는다. 『다크룸』은 정체성들의 경계에서 부침하는 현대인 모두와 공명하는 역사다. 저자는 보편과는 거리가 있는 개인사 속에서 홀로코스트와 트랜스섹슈얼리티의 역사, 국제적 정체성 정치의 오늘까지 포착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는 그렇게 그의 삶과 작업에서 체현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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