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이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으로 뭐가 나아졌나 보면 군소정당의 약진이 기대된다. 아마 지난번 20대 선거에서 적용되었다면 중도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이 최대 수혜자가 되었을 것이다. 거대 양 정당에 염증을 느낀 국민 25%가 국민의당에 정당투표를 했다. 비례대표에서 현재보다 10석 이상 더 가져갔을 것이다. 만약 19대에 적용되었다면 대전, 충청권에서는 자유선진당이 약진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21대 선거에서는 중도정치의 희망을 가진, 그런 파괴력을 지닌 제3의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중도정치의 유용함에 대해 나의 경험에서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젊은 날 일본 유학을 갔었다. 아직 제2외국어로 일본어가 쓰임새가 있을 때다. 일본에서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로 신문배달을 했다. 일본인은 진보를 표방하는 아사히 신문과 보수언론인 요미우리 신문을 주로 본다. 독자가 둘로 나눠진 가운데 꼭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신문을 번갈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목적은 하나다. 구독자를 늘이기 위해 각 신문판매처에서 선물을 준다. 각종 생활용품이나 공연티켓, 스포츠관람권이다. 한 신문만 고집하는 집토끼들은 거의 받지 못한다. 신문을 갈아타는 사람들이 주로 받아간다. 자기와 신념이 안 맞는 신문을 어떻게 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신문구독자를 중도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예로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변화를 못 받아들이거나 다양성이 약한 단일종은 도태하기 쉽다. 특히 단일민족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경우도 노령화와 인구감소로 향후 몇 십 년 후는 대도시만 살아남는 형태가 될 게 뻔하다. 경제규모를 유지하려면 외국인노동자를 국민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누가 그걸 찬성하겠는가. 나는 인구구조적인 측면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중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보통 자본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에 나타나는 진보와 보수는 필연적 흐름이다. 진보와 보수의 논리가 필연적이라 해도 중도의 스펙트럼이 넓으면 사회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중도는 보통 사회구성으로 보면 20% 전후다. 진보든 보수든 다수를 차지하는 옹고집쟁이들이 내놓는 정책에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전과 충남은 이번 21대 대선에서 한 번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이번 선거에서도 대부분의 지역구를 가져갈게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또 싸움질로 21대 국회를 보낼 것이다. 충청권은 그런 점에서 정치편향성은 약하다. 어느 한 정당에 몰표를 주는 일은 없다. 국회의원이 적절히 양분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건 중도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성향이 없을 뿐이다. 중도는 다당제를 만들어 주는 데 있다. 이번 선거제도의 핵심도 다당제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첫 실험대이자 첫 단추이다. 자유선진당 같은 충청권 기반의 정당이 나타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역구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든 자유한국당이든 지금처럼 적절히(?) 안배하고 정당투표에서는 중도성향의 정당에 몰표를 주는 게 현명하다. 절대로 거대 양당에 정당투표를 하면 안 된다. 중도성향의 정당이 없어요, 한다면 충청권에서 앞으로 만들면 된다. 전라도나 경상도 기반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캐스팅보드를 쥔 중도정치를 지향할 수 있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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