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림어린이 제공 |
앙드레 마르와 지음│쥘리엥 카스타니에 그림│김현아 옮김│한울림어린이
콩고의 한 광산에서 희귀 금속 탄탈이 깨어난다. 열 살짜리 흑인소년 노르베르가 두드렸기 때문이다. 노르베르는 하루에 열두 시간 동안 좁고 어둡고 숨 쉬기도 힘든 광산에서 온몸이 부서져라 바위를 깬다. 돈은 많이 버느냐는 말에 노르베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탄탈은 자신이 뭐가 되는지도 모르고 비행기에 실려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떠난다. 작은 콘덴서에 넣어진 뒤에는 공장에서 열여섯 살 소년 루한을 만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루한이 조립하는 건,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손에 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 폰에 들어간 탄탈의 모험은 계속된다. 대도시에 사는 토마스는 셀카를 찍고 SNS를 하고 게임을 하느라 잠시도 손에서 스마트 폰을 내려놓지 않는 부유한 아이다. 토마스가 스마트폰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자 탄탈은 노르베르와 루한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함께 투쟁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마트폰이 뜨거운 국물에 떨어지고, 탄탈은 재활용을 기대하며 다시 여정을 떠난다.
바람과 달리 탄탈은 재활용되지 못했다. 재활용의 기적을 방해한 건 자본의 논리였다. 탄탈은 재활용 센터 소녀 리안의 손에 분해돼 폐전선 더미 위로 던져지고 만다.
광산-공장-도시-폐기물장으로 이어지는 탄탈의 여정은 아동노동 착취의 굴레다. 스마트폰 제조를 둘러싼 불공정무역과 환경오염도 함께 움직인다. 선이 굵은 그림은 일하는 아이들의 힘겨운 현실을 붉은 색과 검은 색만 사용해 강렬하게 전달한다.
탄탈의 삶은 폐기물장에서 끝나지만 아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살고 있었어.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각자의 세상에서.' 탄탈의 말처럼 일하는 아이들은 지금 우리와 나란히 살고 있다. 자본과 편리함의 이면에 눈감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탄탈의 다른 독백은 우리가 바꿀 수 있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