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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거기 두 개의 눈망울이 무르익고 있던
아폴로의 엄청난 머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토르소는 지금도 촛대처럼 불타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사물을 보는 눈이 틀어박힌 채, 그대로 남아 빛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가슴의 풍만함이 너를 눈부시게 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허리를 조용히 돌리며 보내는 하나의 미소가
생명을 가져다주던 그 중심을 향해 흐르지도 않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돌은, 두 어깨는 투명한 상인방(上引枋) 같지만
밑은 흉측하고 볼품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수의 모피처럼 반짝이는 일도 없고,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마다 마치 별처럼 빛이 비치는 일도 없으리라.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고등학교 때 였던가. 릴케의 '가을의 기도'가 교과서에 수록돼 사춘기 감성으로 읊조렸던 기억이 있다. '주여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이 첫 문장만이 생각난다. 맞는 지 모르지만 장미 가시에 찔려 백혈병으로 죽었다던 릴케. 알고 보면 릴케는 조각에 관심이 많은 시인이다. 로뎅을 찬미한 '릴케의 로뎅'이 있지 않은가. 시도 돌덩이를 정으로 쪼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토르소는 온전한 작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머리, 팔, 다리가 없는 몸뚱이만 남겨진 미완성. 그래서 몸뚱이가 눈이고 입이고 손이고 다리이다.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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