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
다리의 조명이나 나무에 달린 조명을 보며 겉만 보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런 의심이 시작되자 화려함이 결코 이쁘다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한 것은 겉을 보고 하는 말이고, 이쁘다는 것은 내면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 발 더 나아가서 화려한 것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쁘다는 것은 눈은 기본이요, 마음까지 쫓아가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이런 결론이 내려지자 그 동안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이쁘다고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이쁜 것은 그렇게 보았는데 마음속에는 물론이고 머릿속에서 한 장면도 찾을 수 없다.
나무에 조명 장식을 하고 공원에 인공 구조물을 세우고 다리에 화려한 조명을 설치하는 것은 인공눈물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내 눈에 살고 있던 눈물이 이미 말랐다는 것을 알았다. 눈이 화려함만 쫓다 생긴 일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든 사물을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눈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정성을 쏟는다.
화려함에 취해 더 이상 사물이 담고 있는 마음이나 특징을 보지 못하고 거기까지 가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언제나 이쁜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고 그 이쁜 것을 항상 곁에 두고 싶어 하면서 정작 이쁜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에 아무리 많은 조명을 설치해도 이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양보를 많이 해도 인공적인 아름다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연미를 볼 시간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인공미를 자꾸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나름 눈은 화려함에 빠져 이쁘다고 오해를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눈과 혀, 귀, 코는 50프로 이하의 촉수를 가지고 있다. 손은 그보다는 더 발달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 눈과 혀를 자극하는 것들이 많다. 영상 콘텐츠는 넘쳐나다 못해 홍수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가장 많이 쓴 눈이 퇴화하고 혀도 귀도 코도 그 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손은 많이 쓰면 쓸수록 따듯해지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마음에 저장이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도구는 결국 무디어가겠지만 사물을 만지고 느끼고 알아보는 것은 손이 그나마 가장 실수를 적게 할 것이다. 화려함은 또 다른 화려함을 요구하지만 이쁜 것은 그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며칠 후면 설이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그려진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 귀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밥상에 앉아 떡국을 먹는다. 덕담이 오갈 것이다. 내가 가장 아끼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말들이 오고갈 때 화려함보다 이쁜 것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손자, 손녀에게 "사랑한다!" 내 새끼들에게 "이쁘다!" 아버지 엄마한테 "사랑해요!" 화려함은 금방 사그러들지만 이쁜 것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손자, 손녀가 이쁘고 새끼가 이쁘고 아버지 엄마가 고맙다는 것을 마음의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쁜 것은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김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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