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한다 하고 의 아녀든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생긴대로 하리라. -변계량-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행정가였던 변계량(卞季良)이 남긴 시조로써 삶의 지혜를 접할 수 있고 특히 대인 관계에서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초장에는 자기 정도(正道)를, 중장에서는 입신유의(立身有義)를, 특히 종장에서는 자기 분수를 알아 행하고 실천하는 순천(순천), 순명(순명)의 천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 아무 정보 없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와 미리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만났을 때 많은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
필자의 동창 중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아 평판이 좋지 못한 친구 A가 있다. 그런 그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동안 전혀 만나지 못했던 친구 B가 모임에 나오게 되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친구 A도 오래간만에 본 친구 B가 반가웠는지 관심을 갖고 가까이하려고 했다.
한 번 시간내서 만나자며 명함도 주고받았다. 그러자 친구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B에게 조심하라고 A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말할 기회가 없어 그냥 그렇게 헤어졌었다.
다시 친구들을 모임에서 만났을 때 A와 B는 절친(切親)이 되어있었다. 그런데다 더 놀라운 것은 B가 어떤 말을 해도 A는 모두 다 동조를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그 둘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B는 누구와 말을 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관심 있게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이 상대와 다를 때는 상대에게 예를 들어가며 이해시키는 모습에 왜 B가 어떤 말을 해도 A가 동조하고 절친이 되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필자 또한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마터면 친구를 위한답시고 다른 친구에 대해 나쁘게 말을 했다면 우스운 꼴이 될 뻔했다.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나를 대하는 게 남과 다를 수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사기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사기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돕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는 것은 지양할 일이다.
탈무드에서는 남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은 살인보다 위험하다고 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남을 헐뜯는 것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한다. 말하는 사람, 이를 말리지 않고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대상자가 함께 죽는 까닭이라고 한다. 남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기를 써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더 죄가 무섭다고 했다. 무기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대에게 상처 입힐 수 없지만, 말은 멀리서도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600여 년 전 변계량 선생이 하신 말씀 "내해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가 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다.
김소영/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