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세상 다시 보기, 김명국의 기려도(騎驢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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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세상 다시 보기, 김명국의 기려도(騎驢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1-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누구나 인생 노정에 수많은 조직을 만난다. 크고 작은 사회 구성원이 된다. 모든 조직에는 조직 방법과 형식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대표자이다. 조직의 발전과 사회적 기여가 역할일 것이다. 공동체의 공적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겪어보니, 업무수행보다 정치적 술수로 자리를 지키려는 경우가 많다. 일은 뒷전이고 자리가 우선이다. 결과적으론 지더라도 우선은 통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사기와 무엇이 다르랴.

정당도 다르지 않다. 좋은 정책 수립과 실현이 지지를 얻어내는 최선일 텐데, 권모술수만 난무한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획득이다. 그를 위한 노력을 탓할 수야 없겠지만, 본말전도(本末顚倒)는 막아야 한다. 전도된 행각에 놀아나지 말자는 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기억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수상품이 열등상품을 이긴다. 화폐에 있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화폐뿐 아니라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분야가 다수 있다. 도덕적 행위가 비도덕적 행위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도덕적 행위가 통용되다 보면, 도덕적 행위는 멀어진다. 비도덕적 행위가 행동양식이 되고 일반화되어 저질문화가 되고 만다. 집단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그런 현실이 싫은 사람은 속세를 떠난다. 은인자중(隱忍自重)을 미덕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동서고금 모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은일(隱逸), 은둔(隱遁), 탈속(脫俗)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처사(處士), 은사(隱士)라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세속 욕망을 초월하고자 하는 초세(超世)가 목표인 종교적 신념과 달리, 현실, 사람을 기피 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세속과의 결별이 단순한 현실도피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큰 현실참여이기도 하다. 번민, 걱정, 욕망,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더 큰 자유와 안온한 삶의 획득을 위한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애착이요, 세상의 질서에 대한 저항수단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최고의 희열과 경지로 삼는다.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유토피아, 이상 세계의 추구요 진리추구이다. 거기에서 다시 고뇌가 출발하고, 고독과 고립이 있다.

인간 세상은 본래 안개 속일까? 혼돈일까? 그 장막을 걷어 낼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정녕 생각만 많고 갈 길은 먼, 고달픔이 인생길인가? 엉뚱하지만 그러한 고뇌를 담은 그림이 동양화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산수화나 산수인물도도 그런 사상을 담고 있다. 그림 속에 작가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려도(騎驢圖), 행려도(行旅圖) 등이다. 내노라 하는 조선의 화가들도 대동소이한 그림을 다수 남겼다. 같은 주제나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린 화가도 많다. 필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그림은 취옹 김명국(醉翁 金明國, 생몰미상)의 기려도이다.

기려도
취옹 김명국(醉翁 金明國, 생몰미상)의 기려도
그림을 보자, A4 크기 비단이다. 작지만 호방한 속도감이 절로 느껴진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려 내렸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갓과 말의 장신구, 몇 개의 줄이 강묵으로 되어 있다. 붓에 먹을 다시 찍어 그렸나 보다. 이것이 생동감을 더한다. 절제와 생략으로 이루어진 단순 간결한 부드러운 선, 발묵으로 그린 묵의 농담이 기막히다. 절충과 조화도 돋보이지만, 그림 같은 인물과 나귀의 정확한 소묘가 또 있을까? 옛 그림에서 이렇게 균형 잡힌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상에 잠겨, 또는 화두를 안고,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선비가 나귀와 함께 가고 있다. 스스로 걸으면 험한 길이 생각을 깨트릴 것이다. 몰아의 경지에서 나귀에게 완전히 몸을 맡기고 있다. 채찍은 그저 들고 있을 뿐 지친 나귀와 호흡을 같이한다. 사색의 자유를 만끽하며 그 깊이를 더한다. 더불어 자연을 완상(玩賞)한다. 힘겨워 보이는 나귀의 모습으로 보아, 사색의 시간이 꽤 길어진 모양이다. 그러함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어지러움과 삶의 무게, 사색의 깊이와 즐거움이 리얼하고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 뜻이 오묘하다. 다시, 함께 감상해보자.

세상은 조화이다. 다양성이 어우러진 어울림이다. 어느 하나만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 없다. 시발점은 될 수 있으나 생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바꿀 수도 없다. 더불어서 함께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하나 이상의 일을 하자. 하나 이상의 단체에 참여하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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