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날씨가 포근해서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4학년 생인 손자를 데리고 대둔산 등산길에 올랐다.
대둔산은 우리나라 8경으로 지정될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가을철 붉게 물든 단풍도 아름답거니와 겨울철 눈 덮인 산은 1년에 두어 번 볼 정도로 자주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철도청에서는 대둔산 산행 열차까지 운행하여 등산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상부를 중심으로 넓게 퍼진 기암절벽에 눈이 덮인 모습은 감탄사를 연신 터트리게 한다.
대둔산은 충남과 전북의 도계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으로 충남 금산군 진산면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논산군 벌곡면, 남쪽으로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처럼 여러 군에 걸쳐 있는 만큼 등산로도 다양한 것이 대둔산이다. 우리 가족은 대전을 출발하여 금산을 거쳐 등반길에 올랐다.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태고사 길이 좋다. 어느 쪽으로 산행을 하더라도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대둔산은 878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고, 오르는 데도 크게 무리가 없는 산이지만 겨울산행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무리가 될 수도 있고 더구나 손자를 대동한 우리 가족들은 더욱 조심을 해야만 했다.
케이불카를 이용하려 했지만 케이블카는 전북 완주군 대둔산국민관광단지 내에 있다. 17번 국도를 타고 금산 추부에서 완주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도계를 바로 지나 오른쪽에 대둔산도립공원 들머리가 나온다. 케이블카의 운행시간은 5분 남짓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기슭에서부터 금강구름다리 바로 아래까지 거리는 1㎞가량 된다.
얼마를 오르려니 아찔한 삼선계단이 하늘을 향해 곧추선듯하다. 삼선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 가족은 약수정에서 물로 갈증을 채운다음 삼선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약수정에서 100m쯤 올라가면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계단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삼선계단이다. 127개의 계단이 마치 하늘을 향해 곧추선 것처럼 맞은 편 절벽 위에 걸쳐 있다. 겁이 많은 사람들은 엄두가 안 나는 계단이다.
삼선계단을 통과하면 정상까지는 약 30분이면 충분하다. 15분 정도 오르면 정상 삼거리가 나온다. 전방으로 낙조대 가는 길이 있고, 왼쪽으로 정상인 마천대로 가는 길이 있다. 낙조대는 그 이름처럼 대둔산의 일몰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월성봉과 바랑산 너머 서해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
정상인 마천대에 서면 대둔산의 전경이 한눈에 잡히는데 우리 가족은 바로 이곳에서 진풍경을 보게 된 것이다.
바로 낙엽들의 운무였던 것이다.
날개 달린듯 낙엽무리가 슈~욱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옆으로 날더니 다시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치 많은 참새 떼가 한데모여 휘익하고 하늘로 이동하는 모습처럼 혼동이 될 만큼 많은 낙엽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고, 어떤 놈은 자랑이나 하듯 더 높이 솟아오른다.
마치 높은 관직에 오르려고 경쟁이나 하듯이. 우리 가족은 더 위로 올라 공중을 한 바퀴 또 한 바퀴 도는 낙엽을 바라보며 모두들 신기해서 얼이 빠진다.
지상에서야 약간 바람 따라 올랐다 땅에 떨어지겠지만 대둔산 중턱 쉼터에서의 낙엽은 가히 생각지도 못할 만큼 하늘로 날아올라 솟아오르면서 많은 낙엽무리가 공중제비를 몇 번이나 도는지 모르겠다.
낙엽이 한두 잎이 아니라 수백 개의 낙엽들이 한꺼번에 바람타고 공중부앙을 하는 모습들이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광경에 모두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한 무리의 낙엽무리가 끝나고도 잠시 머물렀는데 한 개의 커다란 이파리가 휘익하고 공중을 타고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간다. 손자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신기해했다. 솟아오르던 낙엽을 주워 오더니 신기한 듯 의기양양 자랑한다.
하산하는 길에 태고사에 들렀다.
태고사는 원효대사가 발견한 절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1,000여년의 흔적은 거의 없어졌지만 기록상으로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창건하였고, 고려 말 보우(普愚)가 중창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진묵(震默)이 중창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만해 한용운은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태고사는 낙조대에서 800m가량 떨어져 있는데 30분이면 충분히 닿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둔산 일대의 풍광이 또한 아름답다. 우암 송시열이 태고사 앞 바위덩이에 쓴 '석문'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여기 태고사는 석문이 곧 일주문이다. 온르 본 낙엽들이 대둔산을 휘돌아 다니다가 태고사에 와서 지극한 불심으로 내려앉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곧추선 절벽위에 72칸의 웅장한 절을 짓고 인도에서 들여온 향근목의 불상을 봉안하였겠는가. 그러하기에 12승지의 하나로 꼽은 원효도, 술독에 빠져 살며 무애행을 하던 진묵대사도, 그리고 도의 길을 알고자 했던 송시열도 대둔산 태고사에 형형한 흔적으로 남아 나그네를 반겨주고 있었을 것이다.
솟아오르다 낙하하여 땅에 뒹구는 낙엽들이 고마웠다. 짧은 인생 우리네 인간들도 저 낙엽들처럼 인간 욕망을 버리지 못에 높이높이 솟아올라 공중부앙을 하다가 하루 아침에 땅에 뒹구는 깨달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들을 보고 있노라니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낙엽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낙엽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에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 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
나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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