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고 있는 소녀, 베틀 명칭과 상세한 해설이 나온다. 시집이 아닌 모시짜기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 속에는 모시짜기의 위대함, 농촌의 삶, 아낙네들의 한 맺힌 고단한 모습을 노래하는 시 72편이 담겼다.
모시풀 재배과정, 모시풀에서 모시옷이 되기 위한 제직과정, 베틀을 다루는 모습, 모시방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총 4부에 모시와 관련한 일화들이 빼곡하다.
평론가 황정산 교수는 "구재기 시인은 모시의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고 정갈하고 감각적인 모시의 미학이 잘 드러난다"며 "모시의 아름다움에 뒤에 감춰져 있는 농민들이 삶과 노동에 대한 애정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해설했다.
이어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시집을 꾸민다는 것은 소재에 집착한 나머지 각 시편의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 시집에서는 시 한 편 한 편이 생생한 이미지와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완결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무릎도 성한 날이 없어야 / 앞니에는 이골이 나서 / 차마 웃을 일도 없어야 / 비로소 완성되는 / 모시 한 필 -모시 한 필 중에서
찐득찐득 습기 가득한 그 어느 여름날 / 바로 오늘같이 무더운 날 / 삶의 무게를 무새하게 만드는 쓸쓸함이 /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온다 / 홀로 모시를 째고 있는 엄니의 / 깡마른 앙가슴이 가려진 생모시적삼 / 모시올 사이로 작은 바람이 인다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중에서
구재기 시인은 시집 서두에서 "모시풀 포기나누기부터 싹틔우고, 기르고, 수확하고, 째고 삼고 날고 매고 짜서 이룬 한산 세모시 옷, 올 올마다 흥건한 우리의 어머니들, 누이들의 석 되나 되는 침, 그 고운 냄새에 나는 이미 이골이 나도록 길들여 있다"며 모시짜기와 자신의 삶의 배경을 전했다.
한편 시집에는 잊힌 농촌의 말과 모시짜기에 사용되는 용어들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날실을 감는 틀인 '도투마리', 날실의 건조를 막기 위해 날실에 물을 축이는 데 쓰는 '젖을개' 등 모시 용어 사전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 기금을 받아 펴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