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소리없이 다가오는 PTSD로부터 소방관을 구하라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소리없이 다가오는 PTSD로부터 소방관을 구하라

김태한 대전소방본부장

  • 승인 2020-01-15 08:09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김태한2
김태한 대전소방본부장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직업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할 때면, 항상 대기업 임원과 변호사, 판사, 은행원 등과 같이 소득, 권력, 지위, 고용안정 같은 사회적 희소가치를 많이 가진 직업군이 주목을 받는다.

그와 달리 시민들이 신뢰하는 직업군에는 소방공무원, 군인, 간호사, 환경미화원 등 눈에 보이는 물질적 기준보다 직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숭고함·믿음·친근함이라는 정서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신뢰하는 직업군에 1·2위는 항상 소방공무원이 자리 잡는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생명이나 건강에 이바지하는 직업군을 대체로 신뢰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재나 재난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조하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공무원의 모습은 일반 시민들의 감동을 끌어내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든든한 시민의 수호자, 슈퍼히어로 소방공무원들이 시름시름 병들어가고 있다면, 사람들은 믿을 수 있을까?

대다수 시민은 소방공무원들의 노고와 희생정신을 높게 기리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고 자신을 구하러 온 소방공무원에게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밝은 낮 맨정신에는 멀쩡하던 사람이 밤이 되면 돌변해 주먹을 휘두르고 우리를 좌절감에 빠트린다.

아무리 훈련으로 육체를 단련시키고 마음 근육이 튼튼한 소방공무원이라도 이런 부류의 악질민원인에게 시달리다 보면 현장활동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소극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수 불량한 시민들의 무책임한 행동들로 인해 선량한 다수의 시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서글픈 현실에 현장 활동하는 소방공무원들이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우울감은 알게 모르게 점점 스스로를 잠식해 나간다.

시민들이 믿고 의지하는 슈퍼히어로가 차츰차츰 병이 들어가고 임계치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세기 초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던 미군 병사들의 편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쓰여있다.

'입대하면서 나는 악마를 없애겠다고 맹세했어, 나는 일본인이 악마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지. 그런데 말이야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어, 악마는 나였지, 나는 악마를 없앨 거야', '나는 그동안 미국을 위협하는 적을 죽인 게 아니야, 난 그동안 나를 죽여 왔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내가 살았다는 걸 안도하고 있을 때 내가 정상이 아닌 걸 알았어', '난 죽어서 천국에 갈 거야 지금까진 지옥에서 시간을 보내 왔으니까' 등등.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공포, 극한의 스트레스와 싸워야 했던 군인들의 고뇌가 글로 실감 나게 전해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 불리는 이러한 정신적 질병은 육체적 질병과 달리 회복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리고 후유증이 크게 남아 완치가 힘들고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고통받아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소방공무원의 대다수가 경험이 있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이 사회에 얼마나 큰 손실을 줄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여태껏 재난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시민의 안전을 지켜왔던 '라스트맨 스탠딩' 소방공무원, 이제는 국가와 국민이 나서서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김태한 대전소방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