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세는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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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세는 이중생활

  • 승인 2020-01-12 11:39
  • 신문게재 2020-01-13 22면
  • 김시내 기자김시내 기자
김시내
분홍색 복면을 쓴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마치 주방용 고무장갑을 연상시켜 활동명이 '마미손'이다. 본인을 신인 래퍼라 소개했지만 익숙한 음색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매드클라운으로 단정 아닌 인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부정한다. 이쯤 되면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것이 센스이려나. 이번엔 국민 MC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방 곳곳 순회공연을 돌았고 이제는 2집 활동을 앞두고 있다. 모범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이지만 '흥 부자'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연말엔 예능 신인상까지 접수해버렸다. 총 14개에 이르는 국내 최다 연예대상 수상자인데 말이다. 이쯤이면 캐릭터를 하나씩 더 갖는 게 똑똑한 것 같다. 남극에서 온 펭귄인 펭수는 인형탈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실례란다. 펭수의 내면은 20대로 추정되는 청년이 자리잡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 178만을 누리는 비결로는 그의 재치있는 입담이 8할은 차지하지 않을까. 대스타 펭수의 정체가 물론 궁금하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펭수는 펭수다. 아이러니한 이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외모는 증명이 가능하지만 그 내면은 본인도 증명하기 쉽지 않을거다. 그만큼 많은 자아를 품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고유한 나 자신 하나로 인생을 살아간다. 가족의 구성원, 회사의 일원으로 말이다.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미덕이지만 단조롭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지금 세상은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여유를 주는 편이다. 퇴근 후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갖춰 가고 있고 일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인식도 스며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나'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자신을 표현하고 표출하려는 욕구도 강해졌다. 빨간 재생 버튼 속 혹은 네모난 타임라인 속에서 타인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그 방증이다. 마미손, 유산슬, 펭수와 같은 캐릭터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문화적 분위기 조성이 한몫한다.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타인이 정의 내리지 않고 가상의 인물로서 존중하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왔다는 펭수를 얼토당토 않은 말 말라며 정색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이면엔 그들처럼 알게 모르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이 있다. 아주 잠깐일지라도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내가 즐기고 추구하는 지향점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름, 성별, 직장 등의 카테고리에 나를 가두지 말고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재미있게 살아보자. 어쩌면 제2의 인생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비록 인구는 줄고 있지만 가지각색의 정체성으로 생동하는 세상이 그 빈자리를 잊게 할지도 모른다. 인구 수를 뛰어넘는 가치가 분명 있다.

김시내 편집2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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