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광속측정은 긴 역사를 가진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광속은 무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의 갈릴레이는 1600년대 초에 빛의 빠르기가 유한할 것으로 생각하고 측정을 시도했다. 한 사람이 등의 가림막을 벗겨서 불빛을 보내면 멀리 떨어진 다른 사람이 그 빛을 보는 순간 가림막을 벗겨 불빛을 되돌려보낸다. 처음의 사람이 돌아온 그 빛을 다시 보는 순간 경과 시간을 측정해서 거리로부터 광속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반응에 비해 빛은 너무 빨라서 최초의 이 실험은 당연히 실패했다.
덴마크의 뢰머는 1676년에 목성 위성의 공전주기가 지구의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지구의 공전궤도와 관련지어 광속을 구했다. 이렇게 측정한 최초의 광속은 오늘날 광속의 73%에 해당하는 좋은 결과였다. 1729년 영국의 브래들리는 멀리서 오는 별빛의 기울기 변화로부터 광속은 지구의 공전 속력보다 10000배 빠르다는 것을 밝혔다. 프랑스의 피조가 1849년 회전 톱니바퀴 사이를 통과하는 빛의 실험으로 측정한 광속은 현재값보다 5%만큼 크다. 1862년 무렵 영국의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의 현상들로부터 몇 개의 방정식을 만들었고 이것들을 결합하여 전자기파의 파동방정식도 만들었다. 계산에 의한 전자기파의 빠르기와 당시 측정된 광속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고 맥스웰은 빛도 전자기파라고 확신했다. 1887년 지구의 공전 방향에 대해 평행과 수직으로 진행하는 빛의 빠르기를 정밀하게 측정한 미국의 마이켈슨과 몰리는 어느 방향으로 측정해도 광속은 같다고 발표했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측정해도 광속은 항상 같다는 놀라운 결과는 이전까지 믿어졌던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했고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든든한 받침이 됐다.
서양에서 이렇게 광속의 측정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동양에서는 빛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목성의 위성에 대해서도 지구의 공전궤도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서양에서 거대한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수백 년 동안 동양에서는 왜 과학의 발전이 없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연과학에서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는 광속의 측정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만 해도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광속측정은 계속되었고 측정값은 더욱 좋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길이의 기준 자체가 문제였다. 처음 1799년 지구의 둘레를 4000만 등분하여 그 길이를 1m로 하고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자를 만들어 표준으로 삼았고, 1960년에는 특정한 빛의 파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표준이 바뀌었다. 이렇게 정해진 길이의 표준 자체에 극히 미미한 불확도가 있는데 무한정 정밀하게 광속을 측정할 수는 없었으므로 1975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광속을 불변의 상수인 299792458m/s로 정하고 이것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이어서 1983년에는 거꾸로 광속을 이용해 1m를 정하는 것으로 표준이 바뀌었다. 즉 1m는 빛이 진공 중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다.
이렇게 결정돼버린 광속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채 1987년의 나는 무모하고 용감한 제안을 했었다.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