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 이름도, 안부도 묻지 않은 채 보낸 것도 있었다. 연락 한 번 없었지만 그 핑계로 안부를 물어온다. 타향살이 떠난 친구, 유학 떠난 친구, 똑 닮은 2세를 난 친구, 비밀결혼 한 친구…. 다들 잘 살고 있겠거니 하고 이맘때야 문자 한 통 툭 보내온다.
필자는 먼저 연락을 건네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그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부터 물어야 하는지, 정 없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라고만 보내야할지, 만나자며 하지도 못할 약속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싸맸다.
애먼 손톱만 뜯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잘 지내지? 카톡 프사 보니까 좋아 보이더라? 나 잊고 사니까 좋던?" 공무원 시험 본다며 핸드폰도 끊었던 친구. 1년 반 만에 닿은 연락이었다. 프사도 볼 수 없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안부를 알 수 없었던 친구. 그런 그녀가 먼저 연락했다. 어색할 줄 알았던 1년 반의 공백이 단 몇 마디로 채워졌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공부에 시달리지만 친구들 원성에 시달릴 수 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와 전화를 끝내고 나니 그 다음은 쉬웠다. 밀린 인사를 보냈다. 안부도 묻고 새해 덕담도 넣었다. 갑자기 웬 연락이냐며 놀라는 친구도 있고, 되레 안부를 묻는 친구도 있었다. 무슨 용건인지부터 말하라는 친구도 있었다. 시답지 않은 내용인들 어떠하리. 어색하면 어떠하리.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간에 아직도 나에 대해 생각해주고, 아직도 나와 연락할 구실이 있고, 나와 인연을 이어갈 생각이 있다는 거 아니겠나. 그 사소한 것을 왜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코 닿을 거리에 계신 할머니께도 얼굴 비춘지 오래다.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종종 집으로 오시곤 했다. 아픈 허리 이끌며 계단 하나에 거친 숨 하나 이고 오르시곤 했다. 요새는 오지 않으신다. 가는 정이 있다면 오는 정이 있기 마련인데 손자 녀석들이 찾지 않는다고 섭섭하셨는지, 그도 아니면 계단이 무서우셨을까.
할머니도 그 사소한 행복을 기다리셨을텐데. 전화 한 통이라도 밥 챙겨드시라, 산책하셔라, 운동하셔라, 잘 주무셔라 할 걸 뒤늦은 반성으로 새해 첫 날을 시작했다.
올해는 먼저 건네는 사람이 돼야겠다. 먼저 안부를 묻고, 손짓하고, 웃어주는 건네는 사람이 되자. 조금 어색해도 어떤가. 오늘부터라도 시작해보자. '친구야, 할머니, 잘 지내(시죠)?'
박솔이 편집2국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