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살 것’ 인가, ‘살 곳’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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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 것’ 인가, ‘살 곳’ 인가

  • 승인 2020-01-08 09:00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이은지 증명
집(家). 한자로는 갓머리가 덮여있는 형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세찬 바람 막아주는 포근한 보금자리요, 가정의 안식처이다.
 
 하지만 요즘 부는 부동산 광풍은 가히 이상하리만큼 집의 의미를 변질시켜 버리고 있지 않은가. 수백대, 수천대 1의 청약 열풍에 미분양 아파트를 줍는 '줍줍족' 등장, 갓난쟁이 업은 엄마까지 마트에서 장보듯 견본주택 쇼핑을 한다. 요즘엔 임장(부동산 현장답사) 데이트를 하는 젊은 커플까지 등장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세금, 대출, 청약을 망라한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 무려 18번째 조치다. 대책에 대책을 거듭하는 이유는 잡지 못하는 부동산 가격의 반증이다. 
 
 특히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대전 부동산은 말 그대로 뜨거웠다. 타 광역시 대비 저평가 된 집값에 외투(외지 투자자)들이 진입했고, 트램, 재개발 등 호재까지 겹쳐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몇억, 몇천씩 뛰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신축 불패'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분양열기 또한 대단했다. 지역 내 아파트 80% 이상이 10년 넘은 노후주택이라는 현실에, 단비처럼 내린 고가(高價) 브랜드 아파트의 대거 등장은 시민들의 눈을 번뜩 뜨이게 만들었다. 
 
 서울은 또 어떠한가. 얼마 전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는 전국구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우리집은 3억밖에 안 올라서 속상하다'글에 탄식이 나왔다. 누가 누가 더 올랐는지 경쟁하듯 따라 달린 댓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을 가린 익명의 글 속엔 ‘지금 사도 안 늦냐’는 물음부터 ‘남편 몰래 산다’는 아내까지 등장한다. 집을 못 사서, 또는 잘 못 사서, 가정의 평화가 갈리기도 한단다. 
 
 그나마 집이 있어 이번 상승장에 합류한 유주택자들의 집값 상승 재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무주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누가 보상해줄까? 한푼 두푼 성실히 모아온 월급통장은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을 따라가지 못한다. 내 집 마련 꿈을 꾸는 젊은 세대들은 좌절하고 분노하며 이젠 감당 못할 수준의 빚을 내 매수 대열에 합류한다. 
 
 ‘시장은 정책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선 정부는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세금을 걷자는 것인지, 집값을 잡자는 것인지 헷갈리게 해서는 안된다. 

 수년 전 서울 이모댁에서 더부살이 하던 친구가 말했다. "낯선 서울 땅에 내 몸 하나 눕힐 곳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소박한 친구의 말에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족과 살을 비비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은 숫자 이상의 가치다. 그곳엔 고된 하루를 위로 받는 따스함과 행복과 웃음이 있다. 어릴적 집에서 쌓아올린 정서적 양분으로 평생을 배부르게 살아가기도 한다. 지금 우린 몇억, 몇천의 숫자 속에 묻혀 그 추억의 값어치를 잊진 않았나. 집은 '살 것'이 아니라 '살 곳'이다.  

이은지 편집2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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