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출강할 수가 없어 전날 인터넷 검색으로 학교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는데 전화를 받는 분은 친절한 목소리의 주인공 여선생님이었다. 개인적인 사무가 있었던지 아니면 다음날 행사 준비로 늦은 시간까지 퇴근을 못하신 것 같았다.
전화 받는 여선생님이 친절하고 호감이 가는 목소리여서 부담 없이 용건을 얘기했다. 내일 귀교로 1교시 인성강의를 나가는 남상선 강사인데 시작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1교시 시작은 09 :00시 라고 했다.
다음날 네비게이션에 대전교촌초등학교를 설정하고 시간을 재촉하는 심정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어려움 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친절한 학교 지킴이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에 들어섰다. 여선생님이 또 친절하게도 안내를 해 주었다. 실내화 입실이 되는 것 같아 신발장 앞에까지 와서 실내화를 찾느라 신발장을 살폈다. 순간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발장에 '남상선 강사님' 이란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이었고 그 밑에 예쁘장한 실내화가 대기하고 있었다. 학교 당국의 관심과 배려에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듯한 감동에 즐거운 마음이 부피 팽창을 하고 있었다.
이름 석 자 챙겨 주는 것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 같지만 어떤 권력이나 지위, 고가의 돈으로도 해 낼 수 없는 기쁨과 환희를 주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관심과 배려는 작은 것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인성강의를 하러 와서 가르침으로 주는 것보다는 받아가지고 가는 즐거움이 훨씬 크고 많은 횡재의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중등학교 인성강의 차 여러 학교를 다녀 보았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컴퓨터 출력으로 큼직하게 씌어 진 '남상선 강사님' 이란 6글자를 보았을 때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의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 강의하러 오는 강사한테까지 이런 관심과 배려로 세심하게 챙겨주려는 학교 당국이 너무나 고마웠다. 교장(우태영)?교감선생님(조미숙)이나 인성교육 주무선생님(최은연 윤리부장)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 신발장에 이름표 붙여 놓는 정성과 배려 관심 때문인지 관계자 선생님들이 그렇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람의 선입견이라는 것은 머릿속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만큼 중요란 것이란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신발장에 내 이름이!
퇴직 후 6년 만에 존재감을 느끼는, 희열로 포장한 기쁨이었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여름기운의 등살 때문인지 차가운 것이 그리웠다. 선생님들과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앉아 있노라니 교감선생님께서 손수 준비한 시원한 얼음 띄운 차를 앞에 갖다 놓는 것이었다. 선생님들 업무를 보조해 주는 아가씨도 있으련만 시키지 않고 손수 준비를 해서 내오시는 것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환한 얼굴에서는 연이어 미소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고급으로 마시는 얼음 띄운 차에는 필수로 들어가는 것이 모나리자 미소인지 매력의 그것은 빠질 줄을 몰랐다. 운치 있는 찻물에 그 소중한 것이 소리 없이 흡수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소까지 가미한 교감선생님의 손수 타 주신 차이어서 그런지 특별한 맛이 있는 것 같았다.
교양미 넘치는 외모에 차 한 잔이라도 당신께서 손수 만들어 주시고 싶어 하는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는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 분의 인품과 아름다운 마음씨는 교감이 아니라 교육감 직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이 분이 바로 해어화(解語花)가 따로 없는 조미숙 교감선생님이시었다.
말주변 없는 사람이지만 느낌이 많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철부지들을 말귀 알아듣는 사람으로 만들어 바르게 살 수 있게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시니 이 분들이야말로 선생님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찬사로 인사말을 건넸다. 나도 고등학교 교사로서 퇴임을 했지만 학교 현장에 나와 철부지 꼬마들한테 부대끼시는 선생님들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여러 학교 강의를 다녀 보았지만 신발장에 강사 선생님 이름표를 붙여 주는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학교는 전무후무하게도 대전교촌초등학교뿐이라고 극찬을 했다.
수업을 하기 위해 성지혜 선생님반(1교시 3-2)과 이현금 선생님반(2교시 5-4)에 들어갔다. 수업은 1, 2교시였는데 두 분 선생님은 친절한 도우미로 착각될 만큼 인상 깊었다. 교촌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기본소양으로 갖춘 것이 해맑은 미소인지 두 분 선생님께서도 미소로 매력 포인트를 더하고 있었다. 교탁에는 목을 축이며 수업할 수 있는 냉수 담긴 컵이, 오른쪽엔 더위를 식혀 주는 선풍기가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서 시원하게 돌고 있었다. 두 분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 정성에 머리가 숙여졌다. 소중한 것을 고루 다 갖춘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제자들 역시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들이었다. 발표도 잘하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예쁘기만 보이는 눈망울들이었다. 용장 밑에 졸장은 없다는 글귀가 떠올랐다. 그 스승의 그 제자라 해도 흠 잡힐 데가 없을 것 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을 떠올리며 예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의 장점을 찾아 칭찬해 주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 풀꽃 - 나태주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의 말대로 관심과 사랑으로 자세히 보고 오래 쳐다보니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수업마치고 나올 때 교장?교감선생님께 방문 소감을 칭찬 몇 마디로 대신했다. 수업 끝나고 올 때까지 불편 없이 해주기 위해 시종일관 친절과 봉사로, 묻어나는 성실감에다 책임감으로 미안할 정도 잘해 주셨던 최은연 윤리부장님께 느꺼운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따가운 햇살 세례도 아랑곳하지 않고 따라 나오며 아쉬움의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과 그 고사리 같은 손들은 지금 이 순간도 지울 수 없다.
친절과 배려가 상용화된, 웅비의 꿈을 키우는 대전교촌초등학교!
초롱초롱한 눈망울 하나하나는 이 나라의 초석과 대들보가 되리라.
신발장에 내 이름이!
작은 배려 같지만 이것은 큰 감동과 기쁨을 주는 현자(賢者)의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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